다시 개천(開天)의 제단에
다시 개천(開天)의 제단에
  • 경남일보
  • 승인 2012.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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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9월말께부터 진주시가지에 축제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더니 추석이 지나고 10월을 맞으니 본격적인 축제가 펼쳐졌다. 거리엔 청사초롱이 불을 밝히고 축제를 알리는 불꽃놀이가 가을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남강에는 오색불이 휘황한 갖가지 모양의 유등이 수놓아 황홀경을 연출하고 있다. 3일에는 개천예술제도 개막돼 남강 둔치와 촉석루 부근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다.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 시작됐다. 이 축제는 10일 진주시민의 날까지 14일간이나 이어질 것이다. 국내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긴 축제기간이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개천예술제는 그 시작이 영남예술제였다. 해마다 음력으로 상달 초사흘부터 열려 후에 개천(開天)예술제로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만 개최일을 양력 10월3일로 바꾼 것이다. 남강유등축제는 개천예술제의 부대행사로 열린 것을 별도로 떼어내 축제화하여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개천예술제는 시작 때부터 그 속에 진주정신을 심어왔다. 제례의식을 통해 임진란 진주성전투를 기념하고 그때 숨진 장수와 민관군의 영령을 기렸다. 왜장을 끌어안고 의암바위에서 강물에 몸을 던진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논개의 애국정신을 잊지 않고 제를 올렸다. 더 큰 배려는 농사일을 끝낸 인근의 시민들이 한해농사로 지친 몸을 달래라는 의미로 행사시기를 가을걷이가 끝난 10월 상달에 연 것이다. 해마다 예술제가 열리면 인근의 주민들은 그해 수확한 쌀과 콩, 옥수수, 깨, 고구마 등 수확물을 조금씩 마련해 진주시내에 살고 있는 일가친척을 방문하고 며칠씩 묵으면서 예술제를 즐겼다. 그 중 압권이 가장행렬이었고 남강을 따라 흐르는 유등이었다. 가장행렬에는 임진년의 왜란과 맞서 싸운 관군과 의병들의 활약이 주제를 이뤘다. 유등도 전쟁통에 안부를 전하는 방법으로 정보교환의 수단으로 활용해온데 유래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개천예술제와 유등놀이에 민족혼을 담아낸 것이다.

올해의 개천예술제와 유등축제는 과거 어느 해의 그것보다 의미가 다르다. 임진왜란 7주갑(周甲)을 맞는 해이기 때문이다. 60갑자를 일곱 번째로 맞는 의미는 말로써는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감회가 서려있다. 때마침 성내에 있는 전쟁박물관에서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당시 사용했던 총통 등 각종 유물과 유품, 그리고 기록문서들이 전시돼 그때의 치열했던 전쟁과 참혹한 현상들의 편린이나마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특별전을 통해 민족혼을 일깨우고 극일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는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의 팽창주의적 욕구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경기장에선 욱일충천기가 등장하고 독도와 센카쿠열도에 대한 그들의 탐욕은 계속되고 있다. 유럽의 언론은 일본의 이런 행태에 대해 “과거의 전쟁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비롯되고 있다”, “침략자로서의 과오를 잊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심지어는 자국의 지식인들조차 일본의 우경화와 인근 국에 대한 분쟁을 경계하고 있다. ‘상실의 시대’로 유명한 세계적 작가 하루키는 우경화에 앞장서고 있는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에게 “히틀러의 최후를 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앞으로도 팽창주의를 멈추지 않을 것이고 국내법을 고쳐 자위대를 군대화하는 음모를 계속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극일로 무장해야 할 시점이다. 개천예술제와 유등축제도 그냥 축제로 그칠 것이 아니라 극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7만 민관군이 도륙당한 아픔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순국선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산 교육장으로 삼아야 하고 민족혼을 다잡는 다짐의 장이 돼야 한다. 그것이 7주갑을 맞는 임진왜란을 오늘에 되새기는 우리가 할 일이다. 유등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고 남강과 촉석루, 진주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담아야 할 의미이다.

뿌리가 없는 문화는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간난과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선 문화는 후세에도 찬연하게 빛나는 법이다. 우리의 개천예술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길고 유서 깊은 예술행사이다. 그것은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민족혼을 바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진주의 10월 축제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할 축제이다. 흔들림 없는 주체의식에 우리의 정체성을 담고 외길을 걷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함은 불문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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