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91>
오늘의 저편 <191>
  • 경남일보
  • 승인 2012.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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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손을 마구 문지르며 화성댁은 산꼭대기를 또다시 훑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몽당소나무 두어 그루가 있는 것이 보였다. 키가 크지 않은데다가 솔가지가 땅에 닿고 있는 것도 있어서 몸을 숨기기엔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았다.

 ‘쯧쯧, 이 엄동설한에 어디까지 가야 하누?’

 짐 보따리를 이고지고 가는 피난민들을 보며 화성댁은 소릴 죽여 혀를 찼다. 눈은  저만치에서 오고 있는 소달구지에 끌리고 있었다. 

 ‘돈푼께나 있는 집이로구먼!’

 조금은 부러운 눈초리로 중얼거렸다. 소고삐를 잡고 있는 허름한 차림의 남자를 보면 머슴까지 부리고 있는 집인 모양이었다. 달구지에 실려 있는 짐들도 여느 사람들의 피난보따리와는 수준이 달라보였다.

 ‘아이쿠, 천지신령님!’

 달구지가 가까이로 다가왔을 때 하마터면 그녀는 펄쩍 뛸 뻔했다. 남산만한 배를 앞으로 내민 채 등을 짐에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있는 젊은 아낙을 본 것이었다. 해산일이 멀지 않아 보였다.

 우선 화성댁은 길섶에 앉아 소피를 보는 체했다. 달구지가 눈앞을 스쳐갈 때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길 위로 올라섰다. 이어 무작정 달구지 위로 올라앉았다.

 “이 무스그??. 뉘기요?”

 놀란 젊은 아낙이 화성댁을 향하여 눈을 홉떴다.

 소고삐를 잡고 가던 그 남자의 멍청한 퉁방울눈도 화성댁에게 퉁겨졌다. 

 “미안해요. 신세를 좀 지겠수.”

 화성댁은 양미간을 조금 찌푸리며 무릎을 양손으로 슬슬 쓰다듬었다. 아낙의 다른 식구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고배이가 안 좋은메?”

 아낙은 화성댁의 무릎으로 눈길을 그으며 사정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때맞추어 머슴은 눈을 거둬갔다.  

 “아, 예. 그래 얼마나 고생이 많수?”

 얼렁뚱땅 대꾸한 화성댁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아낙의 배를 보았다.

 ‘어떻게 말을 꺼낸다? 다짜고짜 아길 받아주겠다고 할 수도 없고??.’

 “아즈마이는 어드메서 피란왔음메?”

 표정이 조금 누그러워진 그녀는 이북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눈초리로 화성댁을 훑어보았다. 

 “우리 집이야 바로 저어기 산 아랫마을이죠. 일이 좀 있어서 서울 갔다가 되놈들이 내려온다는 바람에 일도 못보고 부랴부랴 집으로 가는 길이라오. 새댁은 어디 갈 데를 정해두고 가는 거요? 산달이 다 된 것 같은데???”

 화성댁은 아낙의 눈치를 예리하게 살폈다.      

 “조오기에 마슬이 있슴메?”

 학동마을 쪽의 숲으로 그었다가 당겨오는 그녀의 눈이 은근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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