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92>
오늘의 저편 <192>
  • 경남일보
  • 승인 2012.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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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으로 들러 쌓여 있어서 인민군도 모르고 지나가는 마을이 있다오.”

 “그럿슴메? 그저 그거 꽝포 아니디요?”   

 상대는 의심 반 기대 반의 표정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꽝포? 보다시피 피난도 안가고 이렇게 멀쩡하게 지내고 있다오.”

 화성댁은 아낙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폈다. 마음으론 상대가 잠시라도 학동에 주저앉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만을 염원하고 있었다.

 피난민 일행과 함께 달구지는 이제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산이래 가찹은 덴 그저 위험하다던디?”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하며 아낙은 학동 쪽으로 또 눈길을 그었다가 그녀 자신의 배로 당겨왔다.

 “내 손으로 받은 그 아기는 쑥쑥 잘 자라고 있겠지?”

 화성댁은 이야기를 너무 그럴싸하게 꾸며서 덧붙였다. 작년 6월, 그러니까 난리가 터지자마자 피난길에 올랐던 어떤 새댁은 출산 후 백일이 될 때까지 학동에서 안전하게 지내다 돌아갔다고 말한 것이었다.

 “아주마이래 얼라도 받슴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고 말았다우.”

 “인민군이래 오지 않는단 그 말쌈 딘실로 꽝포 아니디요?”    

 아낙은 삼팔선 넘어오다가 인민군에게 발각되어 죽을 뻔했다고 살을 붙이며 진저리를 쳤다. 

 “아, 글쎄 그렇다니까요?”

 이윽고 일이 뜻대로 되어가고 있어서 화성댁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부산꺼정은 가야디 안전하다고 했는디? 무스그 일없겠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머슴에게 눈빛으로 동의를 구했다.

 “으, 으, 으으??.”

 머슴은 목을 몇 번 끄덕이며 알 수 없는 말 조각을 입 밖으로 떨어뜨렸다.

 ‘벙어리였어!’

 화성댁은 머슴의 등에다 대고 무심결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등잔 밑이 어둡단 말도 못 들어보셨수? 어디 그것 뿐이겠수? 동네가 워낙에 골 깊은 곳에 있어서 귀신도 못 찾아낸다니까요? 부산이 예서 얼마나 뭔지 알기나 하우? 배를 보아하니 부산까지 가기 전에 해산하겠구먼.”

 그리고는 아낙의 마음을 바짝바짝 조였다.

 이윽고 수원 시내로 들어가면서 그 달구지는 오른쪽으로 난 골목길로 빠졌다.

 “동네래 와 이래 조용함메?”

 학동으로 들어서면서 아낙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돌변했다.

사람의 그림자가 통 보이지 않자 불현듯 두려운 모양이었다.

 “이러니 귀신도 못 찾아낸달 수밖에요.”

 화성댁은 일부러 퉁명스레 대꾸했다. 난리가 나자마자 멋모르고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이 오히려 길에서 불귀의 객이 되어 버렸다고 볼멘소리로 툴툴거렸다.

 “그렇슴메?”

 얼굴색이 금방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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