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93>
오늘의 저편 <193>
  • 경남일보
  • 승인 2012.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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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댁은 냉기만 간신히 면한 안방으로 아낙을 데리고 들어갔다. 머슴에겐 군불을 떼지 않아 냉골인 민숙이의 방을 내주었다.

 ‘이제 씻은 듯이 나을 거야. 암 씻은 듯이 낫고말고.’

 아낙에게 진통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화성댁은 사위가 완쾌되는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여보, 민숙아, 용진 엄마!”

 거울을 손에 들고 있던 진석은 들뜬 목소리로 아내를 부르며 방에서 숫제 튕겨져 나갔다.

 “예? 무슨 일 있어요?”

 민숙은 놀란 얼굴로 안방에서 나왔다.

 “이제 나 다 나았어.”

 이마를 가리고 있던 머리를 걷어 올리며 진석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어머, 정말 여보 오빠!”        

 깨끗해진 남편의 이마를 본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남편의 품에 와락 안겼다.

 “어, 엉! 안 돼. 이러면 안 돼.”

 당황한 진석은 습관적으로 뒷걸음을 치며 아내를 밀어냈다. 

 “왜요? 이제 다 나았잖아요?”

 민숙은 남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악착스레 매달렸다. 그녀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엉겁결에 밀착시켜 버린 남편의 몸에서 절대로 떨어지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래도 안 돼. 이거 놔. 민숙아 이거 놔. 제발 응?”

 아내가 너무 무서워 진석은 통사정을 했다.

 “그냥 이대로 안겨 있겠다는데 당신이야말로 왜 이러는 거예요?”

 민숙은 울먹이고 있었다.

 “병원에 가서 확인부터 해 봐야지. 안 그래?”

 아내가 가여워 진석은 뒷걸음질을 일단 멈추었다.

 “병원? 우리 빨리 병원에 가 봐요.”

 귀가 번쩍 띈 민숙은 마음으론 벌써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어 드러내놓고 검사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대뇌에 아프게 엉켰다.

 “걱정 마. 의사인 친구 놈이 있으니까.”

 아내의 마음을 읽은 진석은 친구의 얼굴을 급히 떠올렸다.

 “친구 분 서울에 있죠? 오늘밤에 서울로 가요.”

 별안간 목소리까지 죽이며 민숙은 속삭이듯 말했다.

 “오늘밤에?”  

 진석이야말로 당장이라도 서울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전쟁 중인데다 또다시 서울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 있는 판국이었다. 친구와 피난을 가지 않고 집을 지키고 있을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민숙은 숨도 쉬지 않고 목을 끄덕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진석은 서울을 되찾고 난 후에 친구에게 가 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들고 있던 거울을 얼굴로 가져갔다. 예전에는 두려워서 보지 못했던 거울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나음을 확인하는 자신의 주치의가 되어 행복한 설렘을 다시 누리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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