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95>
오늘의 저편 <195>
  • 경남일보
  • 승인 2012.10.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핫이불 속에 다리를 집어넣고 있던 아낙은 뜨악한 얼굴로 민숙을 보았다.

 “왔냐? 빨리 방문 닫아라. 바람 들어간다.”

 마침 부엌에서 나오던 화성댁이 딸을 보았다.

 “누구예요?”

 방문을 닫으며 화성댁에게로 눈을 돌렸다.

 “피난 나온 사람이지 누구겠니?”

 “피난 나온 사람이 왜 우리 집에 있냐구요?”

 민숙은 당황히 소리를 질렀다. 연기가 산을 타고 지지대고개로 올라가면 숨겨져 있던 학동마을이 세상에 알려질까 봐 엄동설한에 군불도 제대로 떼지 못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고 할 때가 아닌 것이었다.

 “이 어미가 할 일 없어서 객식구 끌어들인 줄 아니?”

 화성댁도 앞뒤 없이 소리를 팩 질렀다. 후회했지만 소리는 이미 딸의 귀를 건드리고 말았다.    

 “누가 할 일 없대요?”

 “배가 남산만한 사람이 도와달라고 하는데 어떡하겠니? 빨리 집에 가 봐라.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라. 꿈땜 안하고 넘어갔으면 좋으련만!”

 타이르듯 말하며 화성댁은 딸의 등을 떠밀어냈다. 새삼스레 김 서방 혼자 두지 말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꿈자리까지 들먹이는 바람에 민숙은 사립문 밖으로 순순히 밀려나갔다. 집으로 가다말고 그녀는 어머니의 방금 전 장면을 더듬이질했다. 이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은 사람으로 되어 있는 사위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피난 떠난 학동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오는 것조차 경계하고 있는 판국이 아니었던가.

 ‘뭔가 있어. 틀림없어.’ 

 민숙은 친정집으로 몸을 돌렸다. 눈발이 굵어지면서 바람까지 거세어지고 있었다. 조용하기만 한 사립문 안을 지켜보면서 그녀는 일없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처럼 이번엔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아낙은 화성댁의 집에 묵은 지 일주일 만에 딸아이를 낳았다. 아들이기를 원했던지 서운함과 경이로움이 교차하는 눈길로 갓난아기를 바라보는 산모는 건강해 보였다.

 화성댁은 미역국을 끓이는 바로 옆 아궁이에다 아기의 태를 넣고 끓였다. 냄새를 서로 섞어버리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무스그 냄새임메?”

 첫 미역국을 먹다 말고 아낙은 불현듯 물었다.

 “몸이 부실한 딸년 먹이려고 뒷산에서 캔 약초를 달이고 있는데 왜 그러세요?”

 화성댁은 내심 뜨끔했지만 천연덕스럽게 둘러댔다.

 “그렇슴메? 약평아리래 넣고 달임메?”

석연치 않은 얼굴로 목을 끄덕이며 반문했다. 

 “아, 예. 피죽도 못 먹은 년처럼 빼빼 마르는 통에??.”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허, 눈이 오는구나.’

 바람에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그냥 감동 없이 중얼거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