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96>
오늘의 저편 <196>
  • 경남일보
  • 승인 2012.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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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을 냄비에 떠 담은 화성댁은 서둘러 집을 나섰다. 눈이 쌓이기 전에 딸네 다녀올 요량이었다. 냄비를 신주 모시듯 양손으로 들고는 얼음 위를 걷듯 조심조심 걷기 시작했다.

 눈발이 한사코 그녀의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었던지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빤히 아는 길이었고 약을 한시라도 빨리 사위에게 먹이고 싶었지만 발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눈이 그치면 다시 나설까?’

 선 위치에서 거리가 더 가까운 집 쪽으로 목을 돌렸다.

 “아즈마이래 밖에 있슴메?”

 젖이 잘 돌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던 아낙은 문밖에 화성댁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눈발이 좀 가늘어지고 있었다. 화성댁은 딸네로 걸음을 옮겼다. 

 “어, 어, 으, 으, 으??.”

 막 밖으로 나오던 머슴이 때맞추어 안방에서 나오는 아낙을 보며 손사래를 치기 시작했다. 산모가 찬바람을 맞으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내래 볼일이 있어서리??.”

 아낙은 뒷간을 가리키며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머슴은 멋쩍은 얼굴로 대꾸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날씨가 이래 변덕스럽누?’

 눈보라가 다시 휘몰아치자 화성댁은 투덜거리며 또 걸음을 멈추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아낙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 쪽으로 목을 돌렸던 화성댁은 딸네가 더 가깝다고 판단했다.

 ‘이거이 무스그?’

 나란히 걸려 있는 두 개의 국솥뚜껑을 열어젖힌 아낙은 태를 달인 그 솥에서 눈을떼지 못했다. 국물은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걸쭉한 무엇인가를 끓였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설마, 아닐기야.’

 코를 솥 안으로 들이밀며 킁킁거리던 아낙은 앞뒤 없이 진저리를 치며 머리를 들었다.  

 ‘으앗! 약, 약, 약??.’

 얼굴로 오는 눈을 피해 목을 땅에 박고 걸었지만 돌부리를 보지 못한 화성댁은 기어이 넘어지고 말았다. 필사적으로 잡고 있었던 냄비는 땅에 먼저 바깥 밑바닥이 부딪치면서 뚜껑이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때를 같이하여 약은 출렁거리며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걸 어째? 어떻게 구한 약인데. 이 씨부랄 같은 날씨 아주 지랄발광을 하네. 지랄발광을 해.’

 절반으로 줄어버린 약을 보며 눈물부터 왈칵 쏟았던 화성댁은 눈보라를 향해 욕설을 퍼부어댔다.

 “무슨 일 있으세요?”

 어머니의 눈가에 있는 눈물 흔적을 본 민숙은 눈시울을 번쩍 들어올렸다. 하필이면 눈썹이 다 빠져버린 남편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는지 모를 일이었다.

 “일은 무슨, 지랄개떡 같은 날씨 때문에 아까운 약을 절반은 쏟아버렸다.”

 화성댁은 냄비를 딸에게 안겨주곤 바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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