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97>
오늘의 저편 <197>
  • 경남일보
  • 승인 2012.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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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어지셨어요? 다친 데는 없으세요?” 

 인사치레로 몇 마디 물은 민숙은 냄비뚜껑을 열었다. 지난번 것의 절반밖에 되지 않아 보여서 버려진 그 분량에 대하여 아깝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약은 빨리 또 구해 보마.”

 빤히 보이는 딸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던지 화성댁은 자기 자신에게 툴툴거리듯  무뚝뚝한 말투로 대꾸했다.

 눈보라를 속으로 멀어져 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민숙은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옴을 느꼈다.

 화성댁이 집에 도착하지 전에 눈 세례를 받은 산과 들은 하얗게 변해버렸다. 길에도 눈이 쌓이고 있었다. 그녀는 남의 집 담벼락을 붙잡곤 하면서 조심스레 발걸음을 떼어놓고 있었다.

 “아즈마이, 아기래 태 잘 보관하고 있갓디요?”

 아낙은 화성댁이 오기만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작정하고 말했다.

 “그, 그건 왜요?”

 흠칫 놀란 화성댁은 태연한 척하며 반문했다. 머릿속으론 다음 말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고향이래 돌아갈 때 가져갈라 그러디요.”

 화성댁의 표정을 숫제 핥고 있었다. 고향에선 아기의 태를 작은 단지에 넣어 땅에 고이 묻어준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랬다.

 “에엣? 그럼 진즉에 말을 했어야지. 깨끗한 강물에 띄워 보냈는데 어떡한다?”

 “누구래 맘대로 그랬슴메?”

 앙칼진 목소리로 따졌다. 아낙은 솥 안에 남아 있던 끈적끈적한 그 느낌을 떠올리고 있었다. 갓난아이가 입던 것 먹던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신성시 여기도록 교육받은 아낙은 정말 기분이 더러웠다. 

 “뭐라구? 나도 난리 통에 해산한 딸자식이 있는 터라 힘닿는 대로 잘해 주려고 했더니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그까짓 태를 가지고 어머니뻘 되는 나한테 눈을 똑바로 뜨며 따지고 들어?”

 필요이상으로 화를 벌컥벌컥 내던 화성댁은 급기야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쓸데없는 의심 받자고 딱한 사람을 집에 들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주마이래 어드래 그래 잔인함메? 내래 아이 낳은 디 사흘도 안 되었는디 어데를 나가라 들어가라 그러심메?” 

 아낙은 목소리에서 슬그머니 힘을 빼며 화해의 뜻을 비쳤다.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문밖으로 흘러나왔다.

 “젖은 어때요? 빨리 돌아야 할 텐데??.”

 아기의 울음소리만 듣고도 배가 고파 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화성댁은 금방 마음을 풀고 말았다.

어미의 젖을 물고도 아기는 계속 울어댔다. 울상이 된 아낙은 젖을 자꾸 주물러댔다. 퍼런 힘줄이 다 드러날 정도로 퉁퉁 부어있을 뿐 젖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난 화성댁은 밥물을 따라봐야겠다고 하며 부엌으로 나갔다. 젖이 모자라서 잘못되는 아기들을 종종 보아왔던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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