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학수 (수필가·산청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두말 없이 젊은이는 전공분야를 연구하고 기계기술을 익히는 학문이나 재능이 우월하고 민첩하며, 늙은이는 무겁고 둔하며 진척이 느림은 일상의 결과이다. 그렇지만 인간적인 지혜와 도량을 쌓는 데는 경험과 연륜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타가 부인 못할 철리이다.
그런데 젊은이들 중에는 늙은이를 무조건 기득권이나 보수과거 세대로 몰아붙여 몰인간적인 언행으로 배척하고 매도하는 사람도 있다. 위선과 과장으로 치닫는 정치판에서도 그렇고, 군중의 대화가 판을 치는 사회 각처에서도 서슴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급진 사고와 논리에 도취되어 상하를 분간하지 못하고, 노소를 횡적 잣대로 마구 취급하는 근시안적 판단이 횡행하고 있다,
늙으면 누구나 가정에서 할아버지이고 사회에서 노인이며 직장에서 버림받는 퇴인이 된다. 심지어 번듯하게 간판 달고 광고하는 사회단체나 유흥상점조차 늙은이를 멸시하고 꺼린다. 가까운 훗날에 늙은이는 통행하지 말라는 중앙도로를 닦고, 입장금지라는 팻말까지 생길까봐 조금은 걱정이다.
언제나 젊음은 조국의 자양분이고 젊은이는 국가의 주역이며 중추이다. 아직도 부자형제 간에 총칼을 겨눈 6·25의 참상을 거꾸로 알고, 참전용사들의 무성한 백발과 비틀대는 허리를 바로 보지 못하는 외눈 젊은이가 있을까.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젊은이와 늙은이는 신품과 폐품이 아니라 다만 인생 수직선에서 출발한 동행인이다. 극단적 편파 심리와 현실적 이기주의는 분열과 파멸을 자초한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고, 내 물건이 소중하면 남의 물건도 보옥이다. 요즘 고향을 잊고 친구를 배반한 채 조석으로 편가르고 주야로 싸움하는 젊은이도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국을 위한 능력의 발산이 아니라 파당을 위한 정력의 낭비이다.
그들은 허기져서 주름진 아랫배를 상상하지 못하였고, 암흑의 좁은 마을길을 걷지 않았다. 포장된 도로에 자동차로 질주할 줄만 알고, 공장의 높은 굴뚝이 언제 어떻게 하여 세워졌는지 모르고 있다. 황무지가 옥답이 되고 협동과 근면과 자주정신이 진짜 구국이었다는 늚은이의 잡설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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