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순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우선 생각해볼 것은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이다. 성폭력 사건이 엄중하긴 하지만 그 보도가 너무 선정적인 접근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본다. 피해자의 사생활을 낱낱이 보도한다거나 피해자의 수술과정을 중계하듯이 보도하는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이 범죄에 대해 차분히 대책을 마련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책도 대증적이거나 감정적인 대책을 불러오게 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태도가 피해자에게는 2차 가해가 된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범죄 피해자가 된 그들의 사생활이 남김없이 드러나고 심지어는 피해자에게 혹은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그 책임의 일단이 있는 것처럼 묘사되는 것은 2중, 3중의 피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충격적인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에는 또 다른 위험이 뒤따른다. 마치 극악한 범죄만이 성폭력인 것처럼 인지되어 오히려 일상에서 일어나는 성폭력들에는 무감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도 이처럼 끔찍한 형태의 성폭력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단죄의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가해자에게 동정을 보이는 태도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태도는 이러한 태도를 강화시킬 위험이 있다.
이러한 보도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몇 해 전부터 여성단체에서 성폭력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참조하는 언론은 거의 없는 듯이 보인다. 우리 지역부터라도 피해자를 지원하는 기관과 언론기관의 협의를 통해 성폭력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둘째, 성폭력 가해자의 처벌을 강화해 성폭력 재범을 막기 위한 대책도 물론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자체가 줄어들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여름 내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거의 재범방지 대책에 몰려 있다. 10% 내외에 머무르고 있는 신고율, 50% 정도로 나타나고 있는 기소율 그리고 기소된 경우의 50% 정도인 실형률을 생각할 때 재범방지 대책에 해당하는 범죄자들은 전체 성범죄자 수에 비하면 아주 소수이다. 따라서 이제는 재범방지 대책과 함께 성폭력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성폭력 예방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고 그 문제들을 찾아내고 개선하는 작업이 필요하므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그 일을 해야 할 때다. 성폭력 사건뿐만 아니라 ‘묻지마 범죄’와 같이 잔혹한 범죄가 늘어나고, 세계 1위라는 자살률을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점검과 개선노력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인간관계에 대한 감수성을 찾아주는 일이라고 본다.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정규 교과목에 포함시켜서 어릴 때부터 타인과 함께 사는 세상에서 타인과 관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양성간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타인에 대한 폭력이 얼마나 자신과 타인을 해롭게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지난 여름과 같은 성폭력 사건의 도가니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제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우리 사회를 하나하나 점검해 보고 근본적인 성폭력에 대한 예방대책을 만들어내고 그를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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