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98>
오늘의 저편 <198>
  • 경남일보
  • 승인 2012.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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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낙은 잉어를 구해달라고 하며 사례는 후히 하겠다고 같은 말은 몇 번씩이나 해댔다.

 사례가 문제가 아니었다. 잉어란 놈은 흙도 물도 다 얼어붙어버린 이런 겨울철에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화성댁은 혀를 차며 목을 가로저었다.

 “함부로 나다닐 때가 아닌데 어디가우?”

 문밖에 나와 걱정스런 얼굴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던 머슴이 사립문으로 향하자 화성댁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머슴은 뭔가를 구해 가지고 오겠다는 표정으로 한사코 밖으로 나가겠다고 고집했다.

 방에서 듣고 있던 아낙이 밖으로 나와 그에게 목을 가로저어 보였다. 그래도 그는 목을 밖으로 더욱 길게 뺐다.

 결국 아낙과 화성댁은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한참만에야 돌아온 그의 손에는 새끼돼지 한 마리가 들리어져 있었다. 세상에 나온 지 얼아 되어 보이지 않는 그 어린 것은 앞다리를 머슴에게 붙잡힌 채 뒷다리로 버둥거리며 어미를 찾아 울어댔다.

 방안에서 흘러나오던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작아지고 있었다.

 “아즈마이 이거래 푹 고아 주시라요.”

 아낙은 대뜸 그렇게 말했다. 어디서 서리를 해 왔는지 정당하게 돈을 지불하고 사 왔는지의 여부에 대해선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어린 것을 어떻게?”

 화성댁은 그냥 말문이 막혔다. 족발을 푹 고아먹으면 산모의 젖이 잘 나온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다. 

 “내 아기래 죽게 생겼는디 어드래 그리 편한 말쌈을 함메?”

 아낙은 머슴에게 눈짓을 보내곤 돼지 잡는 것을 보지 않겠다는 듯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목을 끄덕거린 머슴은 돼지 턱밑을 손으로 가리키며 화성댁에게 알 수 없는 낱말조각을 튀겨냈다.

 화성댁은 머슴이 칼을 달라고 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선뜻 부엌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있었다. 무어라고 한마디로 딱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움직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울다 지쳤는지 아기의 울음소리는 이제 나오지 않았다.

 뒷마당까지 갔다가 다시 앞으로 나온 머슴은 잠잠해진 방으로 눈을 돌렸다, 첫인상부터 싱글벙글 웃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유난히 어두워 보였다. 화성댁에게로 눈길을 그으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는 직접 부엌으로 들어갔다.

 “내가 가져다주리다.” 

 외간남자에게 부엌을 보일 수 없었던 화성댁은 머슴의 앞을 가로막았다.

 “으, 으악!”

 안방에서 튀어나온 아낙의 비명소리였다.

 “무슨 일이지?”

 도마 위에 있는 칼을 막 집어 들던 화성댁은 비명에 감전되고 말았다. 만사 제쳐놓고 안방으로 훅 빨려 들어갔다.

 아기를 안고 있던 아낙의 눈이 화성댁에게로 퉁겨졌다. 원귀처럼 빨갛게 충혈이 된 눈으로 화성댁을 노려보았다.    

 ‘무서워라!’

 온몸에 소름이 쫙 돋은 화성댁은 무심결에 뒷걸음질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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