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관이라 불리는 젊은 노년
보안관이라 불리는 젊은 노년
  • 경남일보
  • 승인 2012.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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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희 (진주 문산초등학교 교사)

길가의 코스모스는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왔어요! 높은 하늘도 한 번 보세요!"하며 바쁘고 각박한 현대인에게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나는 가끔 운동장을 수놓는 아이들이 때로는 색종이 곱게 접은 바람개비로, 하늘 높이 나르는 오색풍선으로, 때로는 무리지어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희고 분홍빛 뽐내는 코스모스로 보일 때가 있다. 내 마음의 창이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로만 표현해도 끝이 없을 아이들을 향해 요즘 들어 부쩍 불안하게 하고 겁주고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속절없이 쏟아져서 속상하다.

정부와 교육계에서는 이런 단어를 몰아내고 예방하기 위해 무척이나 고민하고 애쓰고 있다. 그 중에는 몇 년 전부터 점차적으로 '365일 온종일 안전한 학교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로 폭력 없는 안전한 학교 문화 조성과 아동 대상 성폭력 사건을 예방하고자 경비인력 확대 배치와 안전사각지대 방지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민간경비와 배움터지킴이라는 이름으로 등교 전, 방과 후, 방학 기간 등 취약시간대 경비를 강화하여 학교 내외의 취약시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이다.

우리 학교에도 작년부터 배움터 지킴이로 채용되어 근무하는 분이 계신다. 퇴직 경찰관이라 그런지 옷차림새부터 남달랐고 연세에 비해 곶은 허리와 단정한 머리 스타일이 우리 모두에게 듬직한 인상을 풍긴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학교 앞 네거리에서 빨간 수(手)신호봉을 들고 농촌지역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돼 좀은 낯선 아파트 앞의 건널목에서 아이들을 건네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는 쉬는 시간에 밀려 나오는 아이들이 혹시 다툼하지 않는지 외부인의 이상한 점이 없는지 일일이 챙기고 학교를 순찰한다.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가면 비슷한 연배의 주무관을 도와 무거운 것도 들어주고 날라주기도 하는 모습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존경이나 사랑받는 일은 모두 다 제 할 탓이라는 말이 맞는가보다. 주로 교사(校舍) 밖에서 활동하는 분이지만 교장선생님이하 우리 모두는 그분의 노고에 감사하고 있다.

배움터 지킴이라는 이 귀중한 일자리는 "퇴직 후 다시 출근하는 그 자체가 감사한 일이고 보람된 일"이라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말끔한 차림으로 출근하는 기쁨에다 나라에서 주는 감사한 봉사 수당은 손자 손녀에게 용돈도 두둑히 줄 수 있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직원들끼리 배움터지킴이를 칭할 때 '보안관'이라고 한다. 당신이 가진 책무성이며 바른 생각 그리고 말끔한 복장에서 풍겨 나오는 인상은 우리 학교를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철통같이 지켜줄 것 같아서 붙여준 근사한 별명이다. 시간만 보내려고 오는 일터가 아니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직업정신을 가진 노년이 진정한 '100세 시대의 프로!'이지 않을까.

/변진희 (진주 문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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