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99>
오늘의 저편 <199>
  • 경남일보
  • 승인 2012.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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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래 내 아기래 살려내라우욧!"

 아기를 방바닥에 내려놓은 아낙은 벌떡 일어나 화성댁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이, 이 무슨? 이거 놔. 이거 놓지 못해?"

 어안이 벙벙해진 화성댁은 맥 빠진 소리로만 대응했다. 아기가 하늘나라로 가버렸다는 것을 확신할 수는 있었다. 태를 나환자인 사위의 약으로 쓰지 않았던가. 부정이라도 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그녀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쓸쓸한 얼굴로 부엌문 앞에 서 있던 머슴은 새끼돼지를 슬그머니 놓아주어버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어린 녀석은 사립문 밖으로 뒤뚱거리며 사라져갔다.

 "무슨 짓이에요? 어른한테??."

 빈 냄비를 가지고 온 민숙이가 아낙의 손등을 세게 꼬집어버렸다.

 아낙은 비명을 지르며 머리칼을 놓아주었다.  

 "왜 또 왔냐?"

 화성댁은 서둘러 민숙의 등을 밖으로 떠밀어냈다.

 "막돼먹어도 유분수지 당장 우리 어머니께 사과하세요."

 민숙은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며 아낙에게 소리를 질렀다.

 "날래 살려내라우요. 날래."

 아낙은 민숙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아기시체를 끌어안고는 한스럽게 징징거렸다. 아기가 잘못되고 나자 태를 보약으로 썼을 것이라는 심증이 굳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 아기를 왜 우리 어머니??."

 "그냥 가래도 그런다. 핏덩이를 잃었는데 정신이 온전하겠냐? 너도 자식 키우는 어미이니 그 마음 알 거 아니냐? 

 딸의 말을 중간에 잘라버린 화성댁은 기어이 민숙을 밖으로 끌어냈다.

 "흥, 자식 키우는 어미?"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민숙의 눈엔 눈물이 핑 돌고 있었다. 서울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남편 곁을 지키기 위해 아들을 떼어 보내지 않았던가. 사무치도록 보고 싶은 아들이었지만 보고 싶어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었다.

 "제정신이 들 때까지 가만히 놔두자꾸나. 실컷 울고 실컷 원망하고 나면 속이 좀 풀리지 않겠냐?"

 민숙을 사립문 밖으로 내보낸 화성댁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자식은 멋모르고 키우지만 손자는 생각만 해도 가슴부터 아려오지 않던가. 그녀도 불현듯   용진이가 그리울 때면 서울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는 것이었다.

 아낙은 사흘 내내 아기시체를 품에 안고 있었다. 화성댁은 지켜보기만 했고 머슴은 알 수 없는 낱말조각을 열심히 튀기며 아낙을 설득했다.

 나흘째가 되어서야 아낙은 눈에 힘을 불끈 주며 아기시체를 머슴에게 내어주었다.  그리고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머슴은 맑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뒷산으로 올라갔다. 화성댁은 아기무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르쳐주기 위해 앞장서서 가고 있었다.

 뒷산 등성을 타고 넘어온 세찬 바람이 학동을 채찍질하며 달리고 있었다. 바람난 눈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눈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사람의 소리는 도무지 들리지 않고 있어서 사람이 사는 마을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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