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00>
오늘의 저편 <200>
  • 경남일보
  • 승인 2012.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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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목에 옹그리고 있던 화성댁은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노을 없는 해거름이 마당에 내리고 있었다.

 '비질을 하려면 제대로 하던지.'

 마당가에 지푸라기와 감잎들이 어지럽게 늘려 있는 것을 본 화성댁은 보이지 않는 바람을 향하여 버릇처럼 중얼거렸다. 

 방문을 도로 닫으려다 말고 화성댁은 밖으로 나왔다. 사위의 약이 다 떨어졌을 것만 같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매운바람에 눈이 시렸던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하필이면 아기를 잃고 슬피 울어대던 아낙의 모습이 떠오르는 바람에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대문이 왜 열려 있는 걸까?'

 습관처럼 딸네 집에 오고 만 화성댁은 입을 헤 벌리고 있는 대문을 보며 목을 갸우뚱했다. 하기야 마을이 텅 비어 버린 후론 대문을 잠그지 않고 지내는 일이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점박이가 꼬리를 치며 마중을 나오고 있었다.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사위가 거처하는 뒤채 쪽이었다. 이불 속에 나란히 누워있는 딸과 사위의 모습을 떠올리다간 제바람에 놀라 목을 짧게 흔들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꼭 좀 알아가지고 와."

 사위의 목소리였다.

 "예. 알았어요." 

 딸의 말이었다.

 '뭘 알아오라는 걸까?'

 본능적으로 긴장한 화성댁은 딸이 앞마당으로 나오는 낌새를 느끼고는 재빨리 대문 밖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왜 그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멋쩍은 표정으로 딸을 보았다.

 "왜 그러고 계세요? 그러지 않아도 지금 어머니께 가려던 참이었는데 안으로 들어가세요."

 버릇처럼 민숙은 어머니의 손에 먼저 눈길을 그었다. 빈손인 것을 보곤 서운한 마음이 일어났지만 겉으론 아닌 체했다.

 "김 서방 약 다 먹었지?" 

 화성댁은 빤한 사실을 굳이 확인하고 있었다.

 "예. 어머니. 그래서 말씀인데요? 그 약 있잖아요?"

 민숙은 약재를 가르쳐달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눈에 광채를 띄었다. 직접 구해서 정성껏 달이어보겠다는 것이었다. 계속 어머니를 번거롭게 할 수 없다는 변명인지 핑계인지도 곁들였다.

 "그건 안 된다."

 당황한 화성댁은 화를 벌컥 내고 말았다.

 "에엣?"

 의외의 반응에 민숙은 퍽이나 놀랐다.

 "아무나 달일 수 있는 그런 약이 아니다."

 목소리에 힘을 갑자기 뺐다.

 "어머니 힘드실까 봐서 그러죠."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이 어미 더 늙어 꼬부라지면 그땐 내 사위 약 만드는 비법을 너한테 넘겨주마."

 화성댁은 비법까지 운운하며 딸의 말문을 막았다. 인심을 쓰듯 바르는 약은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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