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01>
오늘의 저편 <201>
  • 경남일보
  • 승인 2012.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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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 싸움에서 지고 만 민숙은 그냥 할 말을 잃어버렸다. 피부병에 바르는 약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만들곤 하는 것을 보아왔던 터여서 잘 알고 있었다. 그 사실마저도 입에 올리지 못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어둠을 뚫어보며 동공을 굴리고 있던 화성댁은 기어이 무덤에서 나오는 원귀처럼 이불속에서 나왔다.

 밖에는 그믐밤보다 더 짙은 칠흑이 내려 있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뒷산으로 향하던 화성댁은 불현듯 가슴을 툭 쳤다.

 '이제 와서 왜 딴소리야?'

 가슴을 툭툭 쳤다. 

 '안 돼. 인두겁을 쓰고 어떻게?'

 가슴을 '툭툭툭' 치며 몸을 집으로 돌렸다.

 '살인을 한 주제에 인두겁타령하고 자빠졌네.'

 스스로 흥분을 부추기듯 화성댁은 그녀 자신에게 욕을 해댔다.  

 '그래. 내 사위 살리는 일인데 못할 일이 무에 있다고?'

 별안간 용기가 충전되어 씩씩대며 걸었다.  

 화성댁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남아 있던 잔설이 길을 조금씩 밝혀주고 있었다. 뒷산 중턱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런대로 평평한 골짜기가 있었다. 아이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목을 돌리던 그녀는 부지중에 진저리를 쳤다.

 아랫목에 앉아 헤진 버선을 깁고 있던 민숙은 불현듯 어머니를 떠올렸다.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자꾸만 들고 있었다. 아낙을 집으로 끌어들였다는 그 사실이 또 마음을 갉작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아냐. 사람을 죽인 사람이 무슨 일을 못하겠어?'

 급기야 민숙은 친정으로 발길을 당겨가고 있었다.

 '언제 떠났지? 해산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친정집이 텅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한 민숙은 본능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동네가 텅 비어 있어서 마을을 다닐 만한 이웃도 없었다. 아랫목에 앉아서 기다릴 수도 없어서 사립문을 들락거리며 초조히 서성거렸다.

 '아닐 거야?'

 찬바람에 떠밀려 방으로 들어온 그녀는 호롱불부터 밝혔다. 아낙 일행이 묵고 간 흔적 같은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등잔 바로 아래에 있는 반짇고리를 수색이라도 하듯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실타래, 가위, 골무, 바늘꽂이들만 얌전하게 들어있을 뿐이었다.

 화성댁은 준비해 간 호미로 아기의 무덤을 파고 있었다. 젖이 돌지 않던 그 아낙의 아기였다.

 '아, 이 멍텅구리!'

 아기의 시체를 들어낸 화성댁은 자신의 머리를 쿡 쥐어박았다. 코를 막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그 어린 시체에선 고약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숨 끊어지면 썩는다는 걸 왜 몰랐단 말인가?'

 어이없이 구두덜거리며 아기시체를 다시 고이 묻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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