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02>
오늘의 저편 <202>
  • 경남일보
  • 승인 2012.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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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이야. 할 짓이 따로 있지.'

 머리를 가로 흔들며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뭔가 생각이라도 난 얼굴로 밖에 나온 민숙은 우물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중공군이 밀고 내려온 이후에는 물을 길으러 가는 일도 대낮에는 피해야 했다. 한밤중에 우물가에 가진 않았을 것이었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었다.     

 훌쩍거림 같은 것이 귓전에 닿음을 느낀 화성댁은 본능적으로 몸을 낮추었다. 바로 앞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작은 보따리 같은 것을 껴안고 가던 상대는 또 코를 훌쩍거렸다. 울먹임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는 무심결에 웃음을 빼물고 말았다. 

 한밤중의 우물가엔 쓸쓸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잔뜩 기대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민숙은 또다시 막막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상대의 뒤를 소리 없이 밟고 있던 화성댁은 이번엔 작정하고 웃었다. 상대는 남자였고 아기무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어서였다.

 '갓난아기가 분명해!'

 지게에 지고 가지 않고 보물단지처럼 꼭 껴안고 가는 것을 보고 바로 알아차렸다.

 어머니를 더 찾아볼 데가 없어진 민숙은 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 상대는 엎어놓은 바가지만한 아기무덤에 양손을 얹어놓은 채 흑흑 느끼고 있었다.

 '피난가다 빈집에 남몰래 들어 있었을까?'

 화성댁은 인근에 사는 사람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먼동이 뒷산을 타고 넘어오고 있었다.

 사립문으로 들어서던 화성댁은 흠칫 놀랐다. 댓돌 위에 놓여 있는 딸의 신발을 본 것이었다.

 '언제부터 와 있었던 거야?'

 재빨리 부엌으로 먼저 들어가선 아기시체를 항아리 안에 숨겼다.

 "어디 다녀오시는 거예요?"

 인기척을 느끼고 밖으로 나온 민숙은 부엌에서 나오는 어머니를 보며 뜨악한 얼굴을 했다.  

 "언제 왔냐?"

 화성댁은 측간에 갔다 온다고 말하려다 우선 그렇게 물었다.

 "지금 막 왔어요."

 민숙은 어디 다녀오시는지 다시 물었다.

 "측간에 갔다 온다 왜?"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밤새도록 측간에 앉아 계셨던 건 아니시죠?"

 푸르죽죽하게 얼어버린 어머니의 얼굴색을 보며 밤새 바깥에 있었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이년아, 어밀 놀리니?"

 방으로 들어가선 딸에게 따라 들어오지 말라는 듯 방문을 닫아버렸다.

 "눈도 다 녹지 않았는데 밤길 다니시다 낙상이라도 하실까 봐 그러잖아요?"

 쫓겨난 사람처럼 방문 밖에서 소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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