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원 짜리'옷걸이'
100만 원 짜리'옷걸이'
  • 경남일보
  • 승인 2012.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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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희 (진주 문산초등학교 교사)

우리 집에는 100만 원짜리 '옷걸이'가 있었다. 그 비싼 옷걸이는 아이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 타지로 떠나고 이방저방 집 정리를 하면서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으로 분류되어 다른 주인을 찾아 보내주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리 집에만 있을 줄 알았던 그 비싼 옷걸이를 동네 목욕탕에서도 볼 수 있었다. 동네 목욕탕에서도 볼 법한 흔한 옷걸이를 왜 그리 비싸냐면 그 옷걸이가 바로 '러닝머신'으로 불리는 운동기구이기 때문이다.

7~8년 전 쯤 전이었을까? 안방 시장에 정착한 TV홈쇼핑과 그 전파를 타고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참살이(웰빙)열풍이 온·오프라인을 동시에 공략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진주에도 등산용품 전문점과 헬스기구 전문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 진입로에도 제법 알려진 등산용품 관련 매장들이 줄지어 생겨나 출퇴근길 오가며 각양각색의 등산복을 입은 마네킹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맘때처럼 추석명절을 기름진 음식과 함께 보내 허리춤에 살이 잡히는 게 부쩍 신경 쓰이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 보아왔던 등산복을 입은 늘씬한 마네킹의 자태가 그날따라 더 멋져 보였고 그 등산복을 입고 산을 오르기만 하면 당장 허리 살이 쏘옥 빠질 것 같은 유혹에 매장에 들어가 보았더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 가격에 혼자 입는 등산복을 구입하는 것보다 차라리 조금 더 투자해 가족 모두가 운동할 수 있는 헬스기구를 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부 9단의 판단으로 100만 원짜리 러닝머신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사놓고 보니 아이들은 공부하느라 운동할 시간이 없었고 절치부심(切齒腐心)으로 혼자서 서 너 달 사용했을까? 날이 추워지고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워지니 운동이 흐지부지 되다가 어느 날부터 러닝머신 손잡이에는 옷걸이가 하나 둘 씩 걸리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와 운동을 위해 구입한 러닝머신이 내 가족의 건강을 살펴주는 기능을 하지 못하고 100만 원짜리 '옷걸이'로 둔갑해버린 순간이었다.

 나의 귀가 얇은지 마케팅 전략이 너무 효과적인지 꼼꼼하게 비교하지 않고 덜컥 구매하는 경향이 있고 한 번씩 판단력이 흐려질 때가 있다. 눈 감으면 코를 베가는 세상이니 정신 바짝 차리며 살라고 자식들에게는 누누이 당부하면서 말이다.

퇴근하는 저녁시간이면 광고하는 곰국과 추석 뒤 한 동안 광고하는 운동기구, 건강보조기구와 식품…. 그 광고들에 한 번쯤 흔들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제 그보다 더 매력적인 가을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신선한 가을바람이 손짓하는 이 가을, 리모콘을 들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본 홈쇼핑의 충동구매에 현혹되지 말고, 집 안에서 하는 헬스기구에 의지하지 말고 천수교 근처 신안동 강변길을, 하대동 강둑을 지나 상평교까지 걸어보자.

/진주 문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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