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젖줄, 대한민국의 습지를 찾아서 <3>
생명의 젖줄, 대한민국의 습지를 찾아서 <3>
  • 이은수
  • 승인 2012.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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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4천만년 태고의 신비 "창녕 우포늪"

 

물도 아니고 뭍도 아닌 원시의 늪은 온갖 새들이 깃들며 어머니 품처럼 그 안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광활한 늪지에는 수많은 물풀들이 머리를 내밀며 부들, 창포, 갈대, 줄, 올방개, 붕어마름, 벗풀 등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다. 특히 물풀의 왕으로 국내식물 중 잎이 가장 큰 가시연꽃은 우포늪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개발이란 미명아래 국내 많은 늪이 사라지고 이제 늪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곳은 우포늪 뿐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우포늪은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대합면, 대지면 4개 지역에 걸쳐 펼쳐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자연내륙습지로 1997년 7월 환경부에 의해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고, 1998년 3월에는 람사르협약에 등록돼 보호되고 있다.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면적은 여의도 크기과 맞먹는 약 8.54㎢(약854ha, 물을 담고 있는 습지면적은 231ha)에 이른다. 2.313㎢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드넓은 늪지에는 수많은 동·식물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며, 때로는 휴식처로 때로는 삶을 영위하는 터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에는 개발논리에 밀려 생태계의 파괴가 진행되고 있지만, 우포늪은 여전히 생명들을 감싸안고 있다. 동·식물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가슴을 열어보이는 우포늪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느끼게 한다.

◇지상낙원, 우포(牛浦)의 아침

화왕산에서 솟은 해가 수면의 물안개를 걷어내면 우포의 아침이 시작된다. 초가을 우포늪을 보라색 꽃으로 물들였던 가시연이 사그라진 수면은 아침 노을을 받아 연분홍색을 반짝인다. 아른아침 피어오른 물안개가 우포를 물들이고, 수면위로 나룻배가 뜨자 한편의 수묵화가 그려진다. 우포와 인접한 목포 제방엔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왕버들 군락이 연출하는 몽환적 경치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새벽부터 사진작가들이 진을 치고 있다. 물안개가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것은 가을에만 볼 수 있는 우포늪의 진경이다.

이마배를 타고 미끄러지듯 우포에 빠져들었다. 사방에 똑같은 경치가 하나도 없이 것이 시시각각 변하는 거대한 풍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온 몸에 전해지는 물가의 그 시원한 전율은 이루 형언하기 어렵고, 뭍에서 멀어질 수록 우포만 보이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구나. 세상상념 사라지는 물아일체(物我一體)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포에 오면 근심이 사라진다'는 누군가의 말을 절로 통감했다. 왕버들 군락이 장관인 목포는 단골 영화 촬영지로 나룻배를 탄 연인이 수생 식물로 뒤덮인 수면을 헤치고 왕버들 군락사이를 미끄러져 가는 명장면을 연출한다. 하지만 연초록 개구리밥으로 뒤덮인 수면에 나룻배 몇 척이 떠 있는 풍경으로 유명한 우포늪 북쪽의 소목 마을 나루터는 물이 길 위까지 찼다 빠져나가며 올해 세 차례나 지나간 태풍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사지포는 미루나무(이태리 포풀러)들이 강풍(태풍)에 쓰러져 자연의 위력(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을 여실히 보여줬다. 100리 둘레길에 시시각각 변하는 우포의 진면목을 하루·이틀만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천의 얼굴, 우포에 가을이 무르익어 간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청둥오리는 황금빛으로 물든 목포를 유유히 헤엄친다. 흰 뺨 검둥오리는 깃털 손질에 바쁘고, 먹이를 찾던 가창오리와 쇠오리 떼들은 줄지어 날아오르며, 덩치 큰 기러기가 거대한 날개로 비상하며 안식처와 먹이를 찾기에 분주하다. 늪 한가운데 고니 무리는 우아한 자태로 휴식을 취하고, 늪 안쪽의 작은 갯벌에는 자그마한 물떼새들이 먹이를 먹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늪에 반쯤 밑동을 담그고 있는 나무들이 '원시'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늪 주변에 피어난 갈대와 물억새들의 꽃술이 이 곳 저곳으로 바람에 날리는 계절. 우포의 가을을 즐기려는 자전거 동호회원들와 탐조객들의 발길이 잦아지며 자연이 만든 천의 얼굴, 우포늪에 가을의 낭만이 무르익어 간다.

◇국내 최대 자연늪 '우포'의 위기

부산대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우포늪 일대의 습지 총면적은 1918년도에 약 533만㎡에서 2007년도에 약 370만6000㎡로 총면적이 약 69.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쪽지벌은 약 50%가 소실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용호늪은 146만3000㎡에서 54만9000㎡로 줄었다. 우포늪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던 사몰포와 새거리벌은 1984년 이후 사라졌고, 말벌과 학엄벌과 유장벌 역시 완전히 소실됐다. 이처럼 감소되거나 소실된 습지는 논이나 밭, 과수원 등의 경작지로 개간·매립되어 현재 양파, 마늘 등의 농사를 짓는데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우포늪에는 참붕어 등 15종의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그 가운데 생태계 교란종인 배스·블루길의 개체수 점유율이 33.5% 정도로 나타나 고유어종의 서식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우포늪 보전 대책 "박차"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우포늪 습지보호지역 보전 대책의 일환으로 올해 대합면 소야리에 1만7435㎡ 규모의 철새 쉼터 및 먹이터(논습지)를 시범 조성하기로 했다. 이 지역은 우포늪의 주요 철새인 큰기러기(멸종위기 Ⅱ급)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큰기러기의 서식환경과 먹이특성에 맞는 맞춤형 서식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금년에 우포늪과 주남저수지 주변 농경지에 4억7000만원을 투자해 지역농민의 자발적 참여 등을 통한 철새 개체수 증가를 유도한다. 낙동강유역청 신재성 자연환경팀장은 "80년대 67종만 기록되었던 우포늪의 조류는 생태·경관 보전지역 지정이후 해를 거듭할 수록 늘어나 최근에는 160여종에 이르고 있다"며 "늪 주변에 각종 개발사업 및 농가소득을 위한 양파 등 밭작물 재배 증가로 겨울 철새들의 먹이터 역할을 하는 농경지가 감소되고 있는 실정인 만큼 현실적인 보상비 지급을 위한 사업비 증가 및 사업지역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함께 우포늪 수생태계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해 배스·블루길 등 생태계 교란동물 퇴치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사업은 성어를 포획해 개체수를 줄이던 기존 방식과는 달리 인공 산란장을 이용, 생태계 교란동물을 수정란 단계부터 제거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8월부터는 돼지풀, 가시박 등 생태계 교란식물의 제거도 추진하고 있다.

 

[인터뷰] 우포늪 지킴이 주영학씨

"물안개 피는 우포늪 / 철새들은 짝을 지어 노래하는 구나 / 물풀은 우포를 덮고 / 대자연속에 우포늪 숨쉬는 소리가 들리어 오네. "

이른 아침 늪을 찾으면 나룻배를 타고 긴 장대를 저어 수면을 미끄러지는 노인을 만난다. 그는 몇번씩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 4개의 늪 주변을 왔다갔다 하며 쓰레기 줍기를 15년째 해오고 있는 우포늪 환경감시원 주영학(64)씨다. 주씨는 구성진 가락에 맞춰 직접 작사 작곡한 '우포의 노래'를 들려줬다. 주씨의 얼굴과 손은 늪 지역의 찬 바람과 궂은 일로 부르텄지만 우포늪을 바라보는 눈길은 따뜻했다.

"올해는 반가운 노랑부리저어새가 한 달이나 서둘러 도착했고, 큰기러기도 2주 정도 빨리 찾아왔어요. 날씨가 여름에 확 더웠다가 갑자기 추워져 새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예년보다 빨리 내려온 거죠."풍부한 현장경험 덕에 새에 대한 지식도 수준급이다. 이야기 도중에 전화가 왔는데, 전화벨도 뻐꾸기 소리를 했다. 상대는 새박사 윤문부 교수.

윤 교수는 우포를 속속들이 아는 주영학씨에게 현장박사라고 치켜세웠다. 두사람은 윤교수가 주씨의 딸 결혼주례를 설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잎 길이만도 2m가 넘는 가시연꽃을 배경으로 유영하는 하얀 고니의 도도함을 얘기하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요. 사람들이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깨달아가는 걸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끼죠."그는 우포지킴이의 사명감에 불탔다.

주씨는 젊어서는 대구에 있는 어느 직장에서 일하다가 고향 우포늪으로 와 지금까지 현장을 누비면서 우포늪을 지켜오고 있다. 환경 분야에 대한 공로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우포늪은 그 생태보전의 중요성으로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교재에도 나온다.

한번은 어느 중학교의 시험문제지에 '주영학 씨에 대해 맞는 것은?'이란 질문이 나온 적도 있었다. 

우포늪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른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우포늪을 찾는 탐방객들의 안내역을 자임한다. 새벽마다 늪을 찾는 사진작가들을 위해 장대 나룻배를 타고 스스로 풍경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요즘 주영학씨의 업무가 하나더 늘어났다. 1990년대 농가에서 버려진 뉴트리아가 나타나 가시연이나 수생식물의 잎이나 뿌리 등을 갉아먹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가 포획한 뉴트리아는 모두 600여마리. 하지만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어 주영학씨의 주름은 깊어만 간다.

"고마운 자원봉사자들이 주말이면 단체로 찾아와 함께 늪 주변을 치우지만 쓰레기를 줍는 손 못지 않게 버리지 않는 손도 중요합니다. 우포에 오시면서 습지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분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환경지킴이의 순박한 미소가 잔잔한 호수에 빛났다. 이은수기자 eunsu@gnnews.co.kr

1.사진설명: 원시의 숨결이 가득한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창녕 우포늪에서 우포 환경지킴이 주영학(64)씨가 고기잡이 쪽배(이마배)를 타고 새벽을 가르며 우포늪을 둘러보고 있다.

#.우포늪은 살아있는 박물관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우포(牛浦)는 국내 최대의 원시 자연늪이다.

우포늪은 물이 흐르다 고이는 오랜 과정을 통하여 다양한 생명체를 키움으로써 완벽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갖춘 생태계의 보고이며, 생태계를 안정된 수준으로 유지시켜 주는 야생 동·식물의 천국이다. 1억4000만년전에 형성된 우포늪은 홍수 때 낙동강 물이 역류하며 침전된 퇴적물이 토평천 하류에 쌓여 자연 제방을 형성함으로써 안쪽에 남은 물이 습지성 호수를 만들었다.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2급인 가시연꽃을 비롯하여 마름, 창포, 자라풀 등 170여종의 습지식물이 서식하고, 풍부한 먹이와 넓은 휴식공간의 담수생태계로 인해 고니류, 기러기류, 오리류 등 60여종의 다양한 철새들이 도래하며, 수서곤충(55종), 어류(28종), 패각류(5종), 파충류(7종), 양서류(5종) 등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특히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1.2급 노랑부리저어새, 저어새, 큰고니, 고니, 큰기러기, 가창오리, 가시연꽃 등이 서식하고, 붕어, 잉어, 칼납자류, 무당개구리, 두꺼비, 물억색, 생이가래, 자라풀, 개구리밥, 줄 등을 관찰할 수 있다. 또 습지는 대대로 우포늪 주민들이 논고동과 마름 등을 채집하거나 붕어 등 물고기를 잡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이은수기자 eunsu@gnnews.co.kr 사진=황용인기자



※이기사는 경상남도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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