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집단 체념에 빠졌다
교육이 집단 체념에 빠졌다
  • 이영주
  • 승인 2012.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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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객원논설위원·경남교육포럼 상임대표)
얼마 전 어느 기자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다. 전문계 특성화고등학교의 취업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바람직한 현상을 보도하기 위해 취재를 하던 중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학교가 지나치게 학생과 학부모를 닦달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하며 내게 그 이유를 한 번 알아봐 달라고 했다.

몇 군데 학교와 교육청의 아는 분들을 통해 확인해 보니 그 원인이 교육과학기술부가 정한 취업률이었다. 경남의 경우 몇몇 학교는 60%, 나머지 전문계 특성화고등학교는 55%라는 취업률 목표치를 정해주고 이 기준에 미달하면 지원금을 미달률에 따라 감액하겠다고 했단다. 실제로 지난해 목표치에 미달한 학교는 올해 깎인 지원금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실감나게 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전해들은 그 기자는 그렇다면 지금까지 높아진 취업률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고 교과부가 강제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다시 드러냈다. 나는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변명하며 잘하다가도 더 잘해보려는 욕심일 거라고 둘러댔다.

며칠 전 어느 한 교사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 자기가 상담교사 자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상담 전문가를 초빙해야 학교의 실적이 되고 학교 평가에 긍정적으로 반영이 된다며 평가와 실적 중심의 행정을 비판했다. 그러면 선생님이 이 문제를 해소할 절차가 없느냐고 여쭸더니, 명색이 자기가 부장교사지만 이런 불합리한 제도 앞에서는 너무도 무기력하다는 푸념도 했다.

주5일 수업제라 해서 수업시간이 줄어든 것이 아니고, 토요일 할 수업을 다른 요일에 해야 하다 보니 힘만 더 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다. 교육과정 운영에서 학교가 지니는 재량권의 범위가 더 좁아졌다고도 한다. 토요 방과후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는 그 선생님은, 토요일 프로그램까지 하다 보니 토요일 출근은 그대로 하고 수업만 더 많아졌다며 차라리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셨다.

어느 사회, 어떤 조직에서도 문제는 있다. 그리고 모든 사회와 조직은 그 문제를 교정하고 해소시키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문제는 그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느냐다. 필자가 우리 경남의 교육을 걱정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런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도는 있을지 몰라도 사람이 그 제도를 활용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선생님들 모두는 집단 체념에 빠져 있었다.

앞에서 예를 든 그 기자에게 이 문제를 취재하고 보도할 의향을 묻자 당사자 어느 누구도 취재에 응해주지 않는다며 한숨을 짓는다. 내게 불만을 토로하는 어떤 선생님도 이런 부조리한 제도나 정책에 대해 평가하고 수정하는 시스템 안에 자기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 않는다. 해봐도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 하며, 나 하나만 참으면 되는 일이라고 한다. 필자는 이를 집단 체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스웨덴과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 국가의 의사결정 구조에 ‘삼자 합의’라는 것이 있다. 사회적 합의라고도 한다. 노동자와 사용자, 정부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설득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구조다. 그들은 학교에서도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학부모와 교사와 학생이 주기적으로 삼자 대화를 하며 학생은 자기의 학습계획을 발표하고 학부모는 학생의 목표 성취를 위해 무엇을 돕겠다고 보고한다고 한다.

최근에 와서 필자는 교직원이 앓고 있는 심리적 질환일 수 있는 집단 체념을 극복하기 위한 시스템의 점검이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인체의 피 돌기와 같은 것이라 정책의 집행과 평가는 끊임없는 환류와 자기 수정을 통해 더욱 건강한 정책으로 진화하는 것이고 그래야 조직이 유지, 발전된다. 마지막 세포라 할 수 있는 교사들이 이렇듯 체념의 마취 상태에서 조직이 지속된다면 그 미래는 불을 보듯 훤하다. 경상남도교육청과 경상남도의회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한다.

박종훈 (객원논설위원·경남교육포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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