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05>
오늘의 저편 <205>
  • 경남일보
  • 승인 2012.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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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이제 와서 죄송하다고?”

기절했다 깨어나도 딸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던 화성댁은 몸을 일으켜 아궁이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솥 안에 눈을 넣었다. 회심의 미소가 눈가에 살짝 스쳤다. 눈꺼풀을 번쩍 치켜들고 봐도 싸리나무 잎만 솥 안에 가득할 뿐이었다.

“죄송해요. 삽짝 밖에 흙이 떨어져 있기에 전 어머니께서??.”

“부정 탈라?”

화성댁은 여유 있는 손놀림으로 솥뚜껑을 닫았다. 이것저것 함께 넣고 끓이다 보면 가벼운 것이 위로 뜨곤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었지만 약병아리를 뒤덮고 있는 싸리나무 잎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동산 위로 해가 붉은 혀를 내밀며 올라오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민숙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이 협정되었다. 그랬다. 전쟁을 끝낸다는 종전이 아니라 휴전회담이 체결되었던 것이었다.

피난을 갔던 사람들은 살던 집을 찾아 돌아가기 바빴다. 거의 텅 비어 있다시피 했던 학동에도 고향을 찾아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점박이가 목청을 뽑아대곤 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민숙은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화성댁은 돌아오는 사람들의 수를 은근히 따지며 다녔다.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는 사위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선 귀향하는 그들을 막을 순 없더라도 한 가정이라도 적게 돌아오길 염원해야 했던 것이었다.

“제발 나팔 아주머니는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동안 비어 있던 집에 주인이 채워지곤 할 때마다 민숙은 버릇처럼 볼멘소리를 내곤 했다.

“그인 시내로 이사를 갔잖아? 돌아올 이유가 없을 것이다.”

화성댁은 여하간 딸을 안심시켜야 했다.

겨울밤이 무르익고 있었다. 보름을 사흘 앞둔 달이 동산 위로 둥그렇게 떠올라 있었다. 길 떠날 차비를 다 마친 진석과 민숙은 이윽고 방을 나섰다.

초저녁부터 딸네 집에 와 있던 화성댁은 나란히 뒷산으로 향하는 딸 부부를 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원래 첫눈부터 훤하게 보이는 사위였다. 교편을 잡던 시절에 빼입었던 양복까지 차려입고 나서는 사위를 보니 역시 인물 좋다는 생각이 절로 들고 있었다.

진석과 민숙은 서울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병든 남편과 함께 학동으로 내려온 지 처음으로 함께 나들이를 하고 것이었다.

“역에서 만나자니까 그런다.” 뒷산으로 오르면서 민숙이가 헉헉거리자 진석은 안타까운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굳이 마을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닐 필요가 없었다.

“어떡하죠? 잠시도 떨어지기 싫은데???”

민숙은 혀를 쏙 내밀었다.

“누가 널 말리겠니?”

진석은 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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