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되어서는 안 될 역사
왜곡되어서는 안 될 역사
  • 김순철
  • 승인 2012.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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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석 (전 언론인)
이봉창 의사는 1932년 일본 도쿄 경시청 앞에서 일왕 히로히도에게 수류탄을 던졌으나 수류탄의 위력이 약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교수형을 당했다. 이 의사 의거를 계기로 만보산 사건 때문에 악화돼 있던 조선인과 중국인 간의 대립이 완화됐고 중국 정부는 우리 임시정부에 경제적 지원을 시작했다. 광복군 창설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제2, 제3의 이봉창이 김구 선생을 찾았는데 윤봉길 의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지난 10일은 이 의사가 도쿄형무소에서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순국한 80주기였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이 의사 추모행사는 없었다. 이봉창 의사의 훈격은 대통령장(2등급)이다. 의거의 효과는 1등급(대한민국장) 인물들에 비해 손색이 없는데도 이봉창 의사를 왜 ‘홀대’하는 것일까. 이 의사가 미혼으로 순국하여 후손이 없고 서울태생이어서 ‘우리 고장 인물’로 추모해줄 지자체나 지역민이 없고 정부가 관심 없기 때문이다.

원균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선조임금에 의해 이순신, 권율과 함께 1등공신으로 책봉된 장군이다. 임란 이전에도 북방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런데 원균을 임진왜란 때 도망만 다니고 이순신 장군을 모함하기에 바빴던 인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가 패장일 때도 있었지만 옥포대첩, 웅천전투, 당항포전투 등에서 승리한 기록이 있는데도 그는 통영시 광도면에 묻힌 것으로 전해지지만 무덤도 찾을 길 없고 제사 지내주는 사람도 없다.

1등공신인 원균이 왜 웃음거리가 됐을까. 외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전사하여 후손이 없고 그의 본관인 원주 원씨와 지원세력의 세가 약했기 때문이라는 게 사학자들의 풀이다. 또 선조 사후 45년 선조실록을 수정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불세출의 명장인 이순신 장군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고 그와 반목이 심했던 원균을 더욱 나쁜 비겁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으로 있을 때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은 사육신 중 한 명을 빼고 김모를 대신 사육신에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김재규의 죽음으로 논란은 흐지부지됐지만…. 영화 ‘광해’가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영화에서는 광해군을 공정하고 개혁적인 인물로 그렸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것은 광해군은 폭군이며 점쟁이들에게 놀아나 국고를 낭비한 인물인데도….

보는 눈의 각도에 따라 인물평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역사는 진실이어야 한다. 힘센 자에 의해 왜곡되는 것은 더욱 문제다. 여기저기서 발행한 인물전, 자서전, 읍지, 면지 등을 보면 어디나 자기 조상, 회사 창업자, 자기 마을 인물들이 너무나 훌륭하고 흠결 한 점 없는 것으로 적혀 있다. 과장된 기록도 역사를 왜곡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역사든 큰 역사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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