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06>
오늘의 저편 <206>
  • 경남일보
  • 승인 2012.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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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대고개에 가까울수록 발 아래로 깔리던 산은 눈앞을 가로막으며 가파르게 다가왔다.

“당신 친구 만나보고 우리 곧장 용진이 보러 갑시다.”

지지대고개에 올라서면서 민숙이가 숨을 크게 몰아쉬며 웃었다.

나병증세가 거의 없어진 진석은 의전을 나온 그 친구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병세가 호전될 때부터는 거울을 들고 살았다. 눈을 씻고 보아도 눈썹이 없어진 것 외에는 병증이 보이지 않았다. 다 나았다는 확신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이제 진석은 병이 완전히 다 나았다는 진단을 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용진이 녀석 많이 컸겠지?”

밤공기 속에 울리는 진석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용진이가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만 보아온 그였다. 아들과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가는 그런 날을 꿈꿀 수 있었기에 이제 더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궁리를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여길 빠이빠이를 할 날도 멀지 않았어요.” 남편의 은신처이던 굴 앞을 지날 때 민숙은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의 보금자리여 영원히 안녕!”

진석은 만세라도 부르듯 양팔을 번쩍 치켜들며 목청을 높였다.

“어머, 목소리 낮추세요.”

민숙은 크진 않지만 입을 시커멓게 벌리고 있는 굴 입구로 그었던 눈을 마을로 돌리며 속삭였다. 마을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진석이가 이 굴을 찾는 횟수도 많아지고 있던 터였다.

“어머, 그럴까요? 사모님.”

진석은 민숙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슬며시 웃었다.

지지대고갯길로 올라선 둘은 잠시 걸음을 멈추며 심호흡을 했다. 아직 먼동의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고 있어서인지 사방은 고요하기만 했다.

서울방향과 수원시내로 번갈아 목을 돌리곤 하면서 둘은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기차를 이용하려면 수원시내로 가야 했다.

진석은 중절모를 앞으로 좀 내려쓴 덕택에 맨둥맨둥한 눈썹의 자리가 자연스레 가려지고 있었다. 왼손의 검지와 장지는 손끝이 뭉툭해져 있었지만 장갑을 끼고 있어서 남의 눈에 드러나지 않았다. 학동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이상 진석은 그 누구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는 셈이었다.

“우리 그냥 걸어가요.”

민숙은 벌써 서울로 앞장서고 있었다. 통행금지가 풀리지 않는 시각이어서 수원의 기차역으로 가다가는 야경한테 걸릴 수 있었다.

“춥지 않겠니?”

진석이도 서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다.

“물론 무지 춥지 않지는 않죠.”

민숙은 목을 치켜 올린 양어깨 사이로 집어넣으면 우스갯소리로 대꾸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를 때 송송 맺혔던 땀은 찬바람에 식어버리고 온몸에선 오한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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