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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마저 경건하게 하는 고택의 품격(34)일두 선생의 고택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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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0.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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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남계서원
남계서원
윤위식=청계서원
청계서원
가을이 깊어가는 안개의 계절이다. 어둠을 덧씌우고 한밤중을 적시고 간 밤안개의 정적이 머물었던 자리에, 여명을 걷어내고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강물 따라 자욱하게 깔리면, 새로운 비경의 고요한 운치가 가슴을 저리게 한다. 고산준봉에 오르지 않아도 운무를 깐듯하고, 다도해를 앞에 두지 않아도 해무를 덮은 듯이, 건너다보이던 원근의 산들이 새 면화를 갓 탄 햇솜을 살포시 끌어다가 아랫도리를 가리고 누웠는지 앉았는지 봉긋봉긋하게 상반신만 들어내고 있어, 묵향이 그윽한 수묵화가 그려져진다. 아침햇살을 빌어다가 하얀 끝자락을 살며시 벗겨내면, 숨겨진 또 하나의 비경이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지는 추강낙안(秋江落雁))이다. 가을 강가에 기러기가 앉으니 사랑이 있고, 평화가 있고, 풍요가 충만한 화폭을 연상하며 길을 나섰다.

35번 고속도로를 타고 생초 IC에서 요금소를 나오면 남강의 원류인 경호강을 만난다. 맞은편 언덕배기의 조각공원을 건너다보며 생초다리를 건너기 전에 좌회전을 하면, 산청한방공원에서 넘어오는 길과 화계장터에서 만나 함양의 휴천과 마천을 거쳐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길이라서, 생초다리를 건너서 좌회전을 하여 함양과 거창으로 가는 국도 3호선의 구 도로를 틈틈이 찾아가며 길머리를 잡았다.

추수가 끝나가는 들녘에는 시간과 공간의 화합이 절묘하다. 군데군데 황금빛 볏논이 남아있는 사이마다 유별났던 폭염과 폭풍우를 견뎌내고, 이제는 전부를 내어주고 텅 빈 바닥은 속살을 들어냈고, 키가 큰 수수는 아직도 띄엄띄엄 홀로서서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콩밭을 지키고 섰는데, 밭두렁의 비탈진 들머리에는 모닥모닥 노란 소국이 끼리끼리 정겹다.

수동 교차로를 지나자 길섶 저만치에서 홍살문이 높다랗게 솟았다. 홍살문 아래로 나직하게 선 하마비가 차에서 내리려라는데 홍살문 뒤로 주차장이 마련돼 있어 차를 세웠다. 언뜻 보아도 십여 채의 크고 작은 기와지붕들이 낙락장송 푸른 솔숲을 등지고 종횡으로 정연하게 배열돼 있어, 대궐 같이 웅장하고 절집같이 엄숙하여 오지랖을 여몄더니 2층으로 된 삼문누각인 풍영루가 하늘 높이 우뚝 섰다. 동방5현의 한 분이신 일두 정여창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명종 7년에 지방유생들이 건립하고 21년에 사액서원이 된 남계서원의 정문이다.

중문불입의 예법을 따라 옆문으로 들어서니 좌우로 두 개의 네모난 연못이 길을 빗겨 앉았고, 왼쪽으로 일두선생의 업적과 유훈을 새긴 정묘비각의 단청이 화려한데, 오석에 음각된 주홍 글씨의 웅장한 비석도 대단한 크기인데 비의 지붕갓은 놀랄 만큼 거대하다. 좌우로 기립한 영매헌과 애련헌은 누마루를 갖춘 서재와 동재이고, 좌우 돌계단을 나란히 한 석축위로 ‘남계서원’이라는 편액이 붙은 대강당은 명성당이라는 또 다른 편액이 걸려 있고 거경재와 집의재를 좌우의 온돌방으로 갖추고 있다.

“밝게되면 정성스러워 진다”는 중용에서 따온 당호인 명성당 뒤편을 돌아가면 언덕위의 층층석계위로 높다랗게 편액 없는 사당이 우뚝 섰다. 일두선생의 복권에 앞장섰던 개암 강익 선생과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사사하자 이에 맞섰던 동계 정온 선생을 좌우로 배향하고 일두 정여창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서원 뒤편의 담장 너머에는 선생의 묘소가 자리하고 수십 그루의 노송들은 선생의 학덕과 고결한 절의를 유훈으로 전하며 만고상청 높이 섰다.

남계서원을 나오면 인접하여 또 하나의 홍살문이 예를 갖추란다. 점필재 김종직선생의 문하생으로, 선생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은 것이 훗날 무오사화로 비화되어, 사림의 동문과 함께 희생된 탁영 김일손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향사를 올리는 청계서원이 남계서원과 함께 자리를 나란히 했다. 충효지절의 유훈을 되새기며 오늘의 정세와 세태를 뒤돌아보고 정도와 준도의 길을 머리 조아리고 여쭈고 싶은 유서 깊은 서원이다. 고색창연한 고건물의 구조와 배열의 조화는 옛사람들의 솜씨가 경이롭기만 하고 낙락장송이 어우러진 풍치에 파묻혀서 깊어가는 가을의 강과 들을 굽어보고 섰는데 추강낙안은 때가 이른지 남계천위로 백로 한 마리가 어디론가 날아간다.

홍살문을 뒤로하고 1km남짓 가다보면 지곡창촌길로 접어드는 삼거리가 나오고 직진을 하면 안의로 가는 길이라서 좌화전을 하여 창평교를 건넜더니 일두선생의 고택이 있는 개평마을이 나왔다.

마을초입에 들어서자 마을의 표지석이 우람하게 버티고 섰고, 문화유산을 알리는 안내판이 하나둘이 아니라서 예사로운 마을이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커다란 마을 안내도에는 번호를 매긴 고택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한참을 훑어보아도 어떤 순서로 가야할지 갈피조차 잡을 수가 없어서, 무작정 일두선생의 고택을 먼저 찾기로 하고, 이어서 하동정씨 고가, 오담고택, 노참판댁 고가, 풍천노씨 종가를 순서대로 찾을 요량으로 널따랗게 정비된 골목길을 들어서자 “일두고택 홍보관”이 골목 초입에서 길손 맞을 준비를 하고 자리를 잡았다.

자연석을 여유롭게 깐 돌담장 골목길로 들어서서 빤히 보이는 “무형문화재 송주 문화관”을 살짝 굽어 돌면, 높이가 예사롭지 않은 솟을대문이 웅장하게 치솟았다. 충신정려 1패와 효자정려 4패의 하얀 글씨로 주칠목판에 새겨진 정려패 다섯이 붙은 홍살문이 대문의 설주와 나란하게 붙어서 보는 이의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대문을 들어서면 근엄함이 넘쳐나는 ‘ㄱ’자형의 거택인 사랑채가 높은 축대위에 덩그렇게 솟아서 웅장하고 장엄하다. 정자관에 도포입고 누마루에 좌정하신 일두선생께서 12월의 대선을 앞두고 한 말씀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시공을 넘어선 준엄한 훈시가 간절하게 그리워지는데, 누마루 앞의 석가산 노송은 만고풍상 겪었어도 독야청청 말이 없다.
 
윤위식=정여창고택
정여창 선생 고택


사랑채 옆으로 난 일각대문을 들어서면 안채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또 하나의 중문을 지나야 한다. 안팎의 구분이 이리도 엄격하였으니 들고남의 예법 또한 얼마나 준엄했을까를 짐작하게 한다. 객사에서부터 안채와 아래채에 이르기까지 십여 채의 건물구조는 하나같이 단아하고 간결하여 호사를 멀리한 근검함이 배어난다. 안채 뒤로는 또 다른 돌담을 쌓아 단청을 입힌 사당을 모셨고 별당까지 갖춘 남도지방의 대표적 양반가의 고택으로서 대하드라마 “토지”의 촬영장소로 널리 알려진 명소이다.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인 일두선생 고택과 도지정 문화재인 하동정씨 고택과 조선말기 우리나라 바둑계의 일인자였던 사초 노근영선생의 생가인 노참판댁 고가 등 고대광실 부귀영화의 옛 흔적들이 오롯이 넘쳐나는 개평마을 전체가 정원을 갖춘 기와지붕의 고택과 전통한옥들이라서 온종일 발품을 팔아도 모자라서 일두선생의 산책를 따라 선암정에 올랐다.

거북등 같은 육모비늘은 황금색으로 빛이 나는데, 승천을 준비하는 용틀임인지 구불구굴 하면서도 하늘을 치솟은 낙락장송이 줄지어선 솔가지사이로, 첩첩산중의 개평마을이 멀리 가장자리를 들녘으로 둘러치고, 고래등 같은 기와지붕들이 추녀의 끝을 서로서로 맞대고 궁궐처럼 하나 되어 고색창연한 예스러움을 오롯이 간직하고 무오사화로 얼룩진 과거사를 나직하게 깔고 앉아 옛이야기를 오늘에 이으며 도란거린다.

화림동 벽계수는 남계천을 굽이돌고

고대광실 누마루엔 유훈이 준엄하여

충효절의 홍살문이 만대불후 드높구나.

/지역문제연구소장
 
윤위식=개평마을
개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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