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기차역 마저 싣고 떠나버렸네
세월은 기차역 마저 싣고 떠나버렸네
  • 정원경
  • 승인 2012.10.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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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진주역 '새 역사'로 이사 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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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선 진주~마산간 복선 비전철 구간의 우선 개통으로 영업이 중단된 옛 진주 역사의 텅빈 플랫폼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오태인기자
 


경전선 마산역~진주역 복선 구간이 우선 개통되면서 매일 하루 10차례 경전선 상·하행으로 운행되던 마산~진주 간 기차가 22일을 끝으로 중단됐다.

1923년 12월 1일 삼랑진과 진주를 오가는 열차가 처음으로 개통될 때 개시한 진주역은 1925년 8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1956년 지금 모습의 역사로 새로 만들어졌다. 1968년 순천까지의 철로가 개통되었다. 1970년 진주에서 서울 사이에 순환열차가 처음으로 운행되었고, 1993년 서울까지의 새마을호 운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서민의 발이 돼주었던 87년 역사는 이제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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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진주시 강남동 소재 진주역 바로 옆에서 50년간 역전식당을 운영해 온 유영자씨는 “진주역이 없어진다는 아쉬움에 어젯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추억에 아쉬움 달래는 사람들

진주역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80여 년의 역사만큼 진주역과 함께 했던 식당과 슈퍼 등 상인만이 폐쇄된 역사를 지키고 있었다.

50년이 넘게 역전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유영자(75·여) 씨에게 진주역 소식은 아쉬움 그 자체였다.

유씨는 “어제 사무실 집기고 다 옮기고 갔는데 오늘은 나머지 짐 옮긴다고 택배 차가 왔다 갔다 한다”며 “가버리고 나니 마음이 허전하고 어젯밤에는 잠이 안 오더라”며 쓸쓸해 했다.

3남 1녀를 둔 유씨는 부산에서 50년 전 시집을 와 시어머니가 하시던 식당을 물려받아 지금까지 장사를 하고 있다.

유씨는 “예전에는 식당이 아주 잘됐다”며 “진주역이 종착역이라 쌀 한가마니씩 밥을 해 줄 정도로 바빴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예전 사람들로 북적이던 때는 역 주변에 5~6개 식당이 있었지만 지금은 유씨 가게인 역전식당만 남았다.

유씨는 자가용이 많이 없고 버스도 없던 시절 기차로 통학을 하거나 서울로 가는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을 대신해 표를 구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역전식당을 추억 때문에 기차를 타고 오기도 하고 한번 씩 할머니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많다. 할머니는 그 사람들을 보며 세월이 흘러감을 느낀다고 하셨다. 실제 식당을 찾았을 때 10년 만에 유 할머니의 밥을 먹기 위해 찾아왔다며 온 모자가 있었다. 모자는 진주역 이전 소식에 할머니 마음이 많이 아쉽고 서운할 거 같다며 네 살 어린 아들을 업고 진주역을 찾았던 때를 얘기했다.

유씨는 진주역이 없어진다고 해 그제는 포항을, 어제는 순천을 기차로 다녀왔다. 기차로 5시간이나 걸리는 포항을 버스 대신 기차를 이용해 온 할머니를 자식들은 이해 못했다고 한다.

유씨는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제 진주역이 없어져 사람 볼 일이 줄었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역은 떠나갔지만 할머니는 “염라대왕이 데려 갈 때까지 식당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 주변에서 38년 동안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필임(65·여) 씨는 “20년 전만 해도 가게도 많이 없고 대형 마트가 들어오기 전이라 손님이 많았다”며 자녀들도 이 가게로 시집, 장가를 보냈다고 한다.

김씨는 “지역발전을 위해 진주역 이전은 어쩔 수 없지만 역 운행을 할 때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아가씨도 보고 총각도 보고 했는데 이제는 사람들도 없고 아쉽고 섭섭하다”며 “역 개발이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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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진주시 강남동 진주역 광장앞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임김필임씨가 20여년 전 진주역이 붐볐던 시절을 회상하며 아쉬워 하고 있다.
 
◇진주역 이전 소식 몰라 헛걸음

23일 경전선 마산역~ 진주역 복선(비전철) 구간이 우선 개통되면서 함안역과 군북역, 반성역, 진주역 등 4개 역이 새로 이전했다.진주역을 이용했던 승객은 이날부터 새로 문을 연 신진주역을 이용해야 한다.

23일 오후 기차가 도착해 택시들로 가득 찰 시간이지만 이제는 두 세대의 차량만이 폐쇄된 진주역을 찾았다.

커피 한잔 먹으려 들렀다는 택시기사 구동회(52)씨는 “예전에는 손님 태우러 시간 날 때마다 들렀는데 지금은 올 일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진주역 이전 소식을 듣지 못한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우편물을 가져온 우체부도 어제까지 운행하던 기차역이 닫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몇몇은 문 앞에 붙여진 공고를 읽고 택시를 이용해 되돌아갔다. 한 시민은 “이렇게 공고만 붙여놓고 홍보가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니냐”며 “시민의 발을 묶어버리면 어쩌냐”고 볼멘 소리를 했다.

아버지 산소를 갔다가 기차를 이용해 돌아오던 박종선(67)씨도 “진주역이라고 하길래 내렸는데, 내가 알던 곳이 아니라서 잘못 내렸나 했다”며 “같이 내린 할머니들도 병원에 가려 기차를 탔는데 기차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이용해야 했다”고 불편하다고 말했다. 정원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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