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이웃사촌
  • 경남일보
  • 승인 2012.10.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호식 (진주 선학초등학교 교장)
시골 아침은 소리로 시작됩니다. 뒷마당의 개 짖는 소리, 이웃집 마당의 닭 우는 소리, 뒤쪽 대밭의 참새 소리, 위채에서 일찍 일어나신 아버지의 기침소리, 배고프다는 아기의 울음소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닭 우는 소리를 대신하여 태엽을 감아 듣던 자명종 소리는 그래도 정감이 있습니다. 요즘은 휴대폰의 알람소리를 듣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우리들 몸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인 소리는 일체감이 있어 반갑게 일어나지만, 기계음은 나와는 다른 세계의 소리 같아 거부감이 있어 억지로 일어나는 느낌입니다.

이웃집은 구석구석까지 잘 보입니다. 집은 담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담은 허리보다 낮고 군데군데 허물어진 돌담 사이로 충분히 잘 보입니다. 방을 나서기만 하면 무슨 일을 하는지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요즘처럼 문이 이중 삼중으로 닫혀 이웃집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고, 좋은 방음재를 사용해서 소리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잘 모르는 이웃의 소리는 정겹기보다는 소음입니다.

이웃들과는 작은 것들도 항상 함께 나누었습니다. 앞집 옆집에서 평소와 다르게 맛있는 음식을 하면 냄새가 먼저 도착합니다. 뭐 맛있는 걸 만들까 궁금해 하고 있으면, 반드시 담 너머로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냄새가 나고 부르는 소리에 달려가면 틀림없이 먹을거리가 있습니다. 가지나물을 하면 담 너머로 보내 주고, 또 오이무침을 하면 담 너머로 넘어 오곤 하였습니다. 먹을거리와 함께 오가는 정은 더욱 두터워집니다. 요즘은 냄새를 탓하기 바쁘고, 먹을거리가 있더라도 먹어도 괜찮은지 의심부터 해야하는 세태가 아쉽기만 합니다.

앞집에서 무거운 감을 잔뜩 실은 수레가 도착하여 마당으로 내려가는 작은 내리막에 손이 필요하여 큰소리로 부르면 금방 달려가서 도와줍니다. 아무리 큰소리로 불러도 멀리 있는 자녀가 들을 수는 없습니다. 요즘은 통신이 발달하여 수시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는 있지만, 아무리 빨리 달려오더라도 이웃같이 금방 달려올 수는 없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축하할 일이 있으면 모든 일 제쳐 두고 모두들 모입니다. 마치 자기집 잔치처럼 같이 일하고, 같이 기뻐해 줍니다. 어렵고 힘든 일도 함께합니다. 슬픈 일을 당할 땐 서로간에 위로가 되고, 힘든 일은 손을 거들어 해결합니다. 김장김치를 담글 때도 함께하고, 밭일 논일을 할 때도 함께합니다. 요즘은 같이하는 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세태가 안타깝기만 합니다.

시골 풍경, 이웃 집 돌담, 음식 냄새, 이웃의 소리, 이웃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점차 싸늘해지는 날씨에 따뜻한 이웃사촌의 정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정호식 (진주 선학초등학교 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