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재생산되는 희생담론과 모성신화
어머니의 이름으로 재생산되는 희생담론과 모성신화
  • 경남일보
  • 승인 2012.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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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 여성연구소장)
“직원과 교수, 학생들에게 지시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자식들의 아픔을 감싸며 항상 낮은 자세로 집안일에 임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 ○○대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모 대학교 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인데 대학에서 보직을 맡게 된 분의 각오이다. 희생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대학운영을 하겠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것을 꼭 ‘어머니의 마음’으로 연결시켜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사실 한국인을 눈물 짓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는 늘 ‘강한 어머니, 희생하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었다. 오랫동안 어머니의 역할은 우리 가족문화에서 절대적이었고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 고통을 감내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존재로 그려져 왔다. 최근까지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도 흥행에 성공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에서도 구원의 모티브로 모성이 등장한다.

그런데 과연 위대한 모성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자식들의 아픔을 감싸며 항상 낮은 자세로 집안일에 임하는’ 것이 진정한 어머니의 마음일까. 모성의 절대성과 고귀함을 믿는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낄지 모르나 ‘만들어진 모성’이 거론된지는 오래되었다. 모성신화와 모성담론은 사회적으로 재생산되어 온 측면이 많으며 시대적 상황과 국가적 필요에 의해서 구성되기도 한다.

한국전쟁 이후 혼란한 사회에서 유일한 안식처는 가정이며 어머니·아내로서의 의무에 충실한 현모양처야말로 여성의 본분이라고 강조하였고, 각 여학교에 현모양처의 부덕을 닦도록 하는 생활관을 설치하도록 하였다. 1955년 ‘어머니날’의 제정은 모성에 대한 은덕을 널리 찬양하는 기념일이었는데 오랫동안 어머니날 행사는 여성의 삶의 목표이자 지향점이 어머니이고 끊임없는 희생과 인내가 어머니의 미덕임을 국가 차원에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모성의 이상화는 끊임없이 여성에게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이상적인 여성상을 주입시킨다. 또한 이는 생물학적으로 모성을 타고난 여성이 사적인 가사일과 자녀양육, 돌봄 노동에 더 적합하다는 성별분업 논리를 정당화시켜 왔다. 실제 현실에서 모성경험은 여성들에게 다양하게 나타나고 모든 어머니들이 헌신적이며 희생적이기만 할 수는 없는 데도 헌신과 희생이 어머니의 이름으로 재생산되고 모성담론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온 것이다.

희생적인 어머니상은 미화되고 희생적이지 않은 여성은 이기적인 여성으로 매도된다. 완벽한 어머니에 대한 환상은 완벽하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비난의 화살은 주로 어머니에게 날아간다. 평상시에는 ‘아줌마’로 비하하지만 사회의 위기가 심화되면 더욱 ‘어머니’를 부른다. 오죽하면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어머니 수난사’(강준만·2009)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왔을까.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모성담론이 강한 상황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삶 전체를 자녀에게 투자하는 어머니, 직장생활로 누군가에게 자녀를 맡긴 채 끊임없이 불안해하거나 심지어 죄책감을 느끼는 어머니, 일과 가정을 완벽하게 하고자 하는 슈퍼우먼 어머니, 평생을 자녀 주위를 맴돌며 과잉보호하는 헬리콥터 어머니, 자녀가 다 자란 후 인생의 무상함에 빠져버린 어머니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들의 교육수준 향상,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의 증대, 출산율의 저하 등으로 여성들이 처한 사회환경은 변하고 있으며 여성들의 의식도 변하고 있다. 자식과 가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상이 오늘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현대사회의 여성들도 그러한 어머니상에 감동받고 그것을 자기 정체성의 핵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강하고 희생적인 어머니상은 이 시대 다양한 욕구를 지닌 여성들과 어머니들의 자화상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이 달라진 여성들의 경험과 의식, 정체성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완벽한 어머니상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완벽한 어머니상과 그 이름으로 재생산되는 희생담론과 모성신화는 극복돼야 한다.

이혜숙(여성연구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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