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에 느끼는 인생
가을철에 느끼는 인생
  • 경남일보
  • 승인 2012.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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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가을은 인생을 느낄 수밖에 없을 만큼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생애가 무엇이 다르랴. 지난 여름철 쏟아지던 불볕 아래 푸르른 녹음의 야망도 안쓰럽고 측은하게 바라보며 새김질해야 하는 지금, 우리들의 소중한 마음 그 본래의 바탕색을 보는 듯 인생의 사계절을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왔다 할지라도 가을 길을 걸으면 왠지 가슴이 비어지고 허전함을 느낄 것이다. 저녁의 나이라서 일까마는 쓸쓸한 우리들의 마음을 알 듯 모를 듯 청산은 언제부터인지도 모른 채, 저렇게 빨리 물이 들어간단 말인가.

자연도 그 삶의 구비마다 매듭마다 진실의 빛깔이 있듯이 아름다움의 끝이란 초목의 것이나 사람의 것인들 무엇이 다르랴. 가을바람, 가을 이슬, 가을 햇살, 가을 꽃 같은 정갈하고 서늘한 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붉은 단풍 같은 불타는 참회, 처절한 웃음을 가져오기도 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화려한 곳에서 오래전에 밀려난 듯, 인생을 어정대며 살아왔기로 어찌 이것이 어제 오늘의 갑작스런 일이랴. 참으로 인간사 세월이란 흐르는 물과 같을까. 우린 이미 나이로도 저녁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름답고 화려한 세상을 감히 꿈꾸며 가을밤 풀벌레 울음도 애써 끌어안으리다.

비록 우리들의 삶이 쭉쭉 뻗은 길같이 평탄하지는 못했어도, 관심 밖의 좁다란 길이었다 해도 때로는 군데군데 무리지어 피어있는 가을꽃처럼 청초하고 담백하게 피어서 남이 모를 호젓함도 깃들어 결단코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려고 했었다. 따가운 햇볕을 받아 내야만 익어서 단맛 드는 꿈도 있지만, 서늘한 달빛 아래서도 제 눈물로 익어서 단맛 들 줄 아는 서러운 꿈도 있었으니. 결국 삶이란 여려 가지 방식과, 여려가지 의미와 소중함을 찾아 이루기 위해선, 가을하늘은 여름하늘처럼 가슴 쳐 아파 우는 천둥과 번개, 또 소나기의 아픔을 잘도 참아내야 하는 것임을 어찌 모르리까.

이제는 자학하지 말자. 돌아보면 그 어느 인생도 후회로 그늘지지 않음이 없으니, 대낮이 있고 한밤이 그 뒤를 서서히 따르기에, 대낮의 밝음은 더욱 눈부시지 않는가. 삶은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준비이지만 조용히 세월을 맞이하고 조용히 보내온 그 한 가지만으로 얼마나 고마운가. 꿈이란 야망이란 젊음이 들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을. 중년에는 그윽한 꿈이 있고, 노년에는 노년다운 꿈이 있다는 것을. 나머지 햇발로도 요란하지 않는 조용한 꿈을 꽃피우고 무르익히기에 오히려 충분한 우리들이 아닌가.

황홀하고 겨운 행복에도 웃음꽃이 피지만, 서러운 기슭에도 서러움의 꽃이 피어날 줄 아는 이 가을. 찬이슬을 맞고서도 꽃이 피는 들국화나 구절초 같은 아름답고 고귀한 가을꽃들이 봄철 꽃보다 여름철 녹음보다 뒤떨어진다고 어느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으랴. 불타는 정열의 여름 불볕이 아닌, 쓸쓸한 가을 가을햇발에서도 열매는 무르익고, 서리치는 늦가을 서러운 기러기 울음과 차가운 가을비를 흥건히 맞아내고서야 붉게 익어 단맛 깊이 들 줄 아는 가을 과일도 있는 것일진대, 어째서 꿈과 희망과 그 실현이 한여름 젊음의 시절에만 한정되는 것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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