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09>
오늘의 저편 <209>
  • 경남일보
  • 승인 2012.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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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서로 떨어져 살 거니?”

민숙은 정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친누나라도 되는 것처럼 따져 물었다. 할머니도 세상을 떠난 마당에 정자가 시골집을 지키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나한테 맺힌 게 많은가 봐요. 누나가 말 좀 잘해 주세요.”

형식은 무심결에 속말을 그대로 해 버렸다.

그는 아내가 피난지에서 돌아왔다는 소문을 처음 들었던 그때 바로 학동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일체의 서론을 생략한 채 서울로 살림을 합치자고 했다. 그 동안 혼자 고생한 아내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정자는 말없이 목을 가로저었다.

눈물까지 흘리며 좋아할 줄 알았던 형식은 어이없이 화를 벌컥 냈다. 아내의 얼굴을 대하는 순간 미안한 마음이 가슴을 쿡쿡 찌르기는 했다. 남편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흥, 나한테 말을 잘해 달라고? 손발이 닳도록 싹싹 빌어라.”

정자에게 상처를 준 주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민숙은 말문이 막혔다.

“언제까지 서울에 있을 거예요?”

급히 딴말로 대치하며 형식은 민숙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에 민숙은 서울에 자주 오는 편이 아니었다. 어쩌다 와도 아들 얼굴만 보고 학동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런 사실을 형식이도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은 서울에서 묵으세요.’

형식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빌었다.

“한 십년쯤 푹 쉬었다 갈 예정이야.”

철없는 상대가 학동까지 동행할 꿈에 들떠 있을 것만 같아 민숙은 그렇게 대꾸했다.

“그럼 그러세요.”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그림자를 힐끗 본 형식은 몸을 돌렸다.

‘이제 철이 좀 드려나?’

용진의 얼굴만 보고 학동으로 같이 가자고 떼라도 쓸 줄 알았던 민숙은 순순히 몸을 돌리는 형식을 보며 입을 좀 내밀었다.

“엄마아!”

마침 가게에 나와 있던 용진은 민숙을 보고 와락 달려들어 안겼다.

“요, 용진아. 엄마 피곤해. 할머니께 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밀어내며 민숙은 목을 옆으로 돌렸다. 뼛속 깊은 곳까지 저려오고 있었다.

“안아줘도 괜찮아. 올케!”

동숙이가 나서서 무안한 얼굴로 서 있는 용진을 민숙에게로 떠밀었다.

“안 된다!”

여주댁이 용진을 잡아당기며 며느리를 흘겼다.

“잠깐 안아준다고 탈이 나지 않는다니까요?”

동숙은 못마땅하다는 듯 툴툴거렸다.

멀뚱한 눈으로 고모와 할머니를 번갈아보던 용진은 급기야 민숙에게 눈을 고정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용진아, 울지 마. 응? 울지 마.”

아들을 달래는 민숙이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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