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정치와 '최술'의 어머니
우리시대의 정치와 '최술'의 어머니
  • 경남일보
  • 승인 2012.10.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2011년 초, 당시 뉴질랜드 정부 주택부장이 저녁식사에 동료를 초대했는데 집에 술이 없었다. 마트로 술을 사러 나간 그가 지갑을 잊고 나오는 바람에 공무용 신용카드로 1000 뉴질랜드 달러를 결제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 비용을 어쩔 수 없이 공무접대용에 포함시켰고 1주일 만에 결국 정부감사를 받아 정직처분을 당했다.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정치를 하는 뉴질랜드로서 이는 정상적인 처분이었다.

최근에 있었던 우리의 2가지 경우만 살펴보자. 첫째, 제 2금융권 저축은행 사태다. 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으로 대부분 시장에서 평생 새우젓국과 갈치를 팔아 어렵게 모은 돈들이다. 그러나 이를 감시 감독하는 정부관료들은 뇌물을 받고 부실감사를 했다. 해당 관료가 은퇴를 하면 저축은행에 이사 자리를 주는 식의 전관예우를 약속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계속 덮어 왔던 것이다. 부끄럽게도 이런 돈을 받아 정치를 해 온 여야핵심 국회의원들도 있었다.

둘째,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탐욕스럽게 부를 불린 다수의 졸부들이다. 이들은 정치권력마저도 손에 넣기 위한 뒷거래를 하고 있다. 여당은 공천대가로, 야당은 공천 알선대가로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바로 그런 것이다. 돈을 받은 똑같은 사안을 놓고 보수언론은 여당의 공천헌금이라 하고, 진보언론은 야당의 공천헌금이라 한다. 공정성이 생명인 언론이 자기취향에 맞는 정당에 대하여는 ‘헌금’과 ‘뒷돈’을 서로 헷갈려 한다. ‘헌금’이란 중립적인 의미나 합법적인 의미지만 ‘뒷돈’은 은밀히 주고받는 돈인데 이 경우는 명백한 뒷돈 거래다. 각 정당들이 대표주자들을 내세워 돈을 받는 모습을 보면 조선시대에 소위 합부인(閤夫人)을 시켜 거래하는 매관매직(賣官賣職)의 형태와 닮은꼴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런저런 비리에 관련된 자들의 신병처리 형태이다.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이 영장청구 원칙론과 정치적 부담 현실론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거물정치인 대부분은 불구속 기소되어 나오도록 유도한다. 이런 사안은 뉴질랜드 같은 정상적인 정치관행의 예를 들 필요도 없는 명백한 위법이다.

올해 우리는 총선을 치렀고 이내 대선을 앞둔 시점에 있다. 청렴지수가 높은 국가나 옛 선현의 선덕정치를 다시금 이 나라에 뿌리내리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일사유사(逸士遺事)’에 따르면 조선시대 호조판서 김좌명은 하인 최술을 서리로 임명해 중요한 직책을 맡겼다. 몇 달 후 최술의 홀어머니가 판서를 찾아가 이르기를 아들을 그 직책에서 물리고 다른 자리로 옮겨 달라 하였다. 이유를 묻자 최술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은 가난해서 끼니를 때우지 못하다가 대감의 은공으로 밥을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중요한 직책을 맡자 부잣집에서 사위로 데려갔습니다. 아들은 이제 처갓집에서 뱅어국도 맛이 없어 못 먹겠다고 합니다. 제 분수를 모르는 마음이 몇 달 사이에 이와 같으니, 재물을 관리하는 직책에 오래두면 큰 죄를 범하고 말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자식이 벌 받는 것을 그저 볼 수만은 없습니다. 다른 일을 시키시면서 쌀 몇 말만 주어 굶지 않게만 해 주십시오” 라고 덧붙였다. 김좌명이 이를 기특하게 여겨 그대로 해 주었다. 우리 시대 정치인의 어머니들은 최술의 경우에 어떻게 행동하고 있을까?

올곧은 부모와 스승으로부터 받은 교육을 행동으로 옮기고 역경과 시련을 통해 함양을 더하면, 마침내 내면이 가득 찬 좋은 지도자가 된다. 이런 지도자는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쉽게 남에게 의지하면서 반칙으로 살고자 하면 온 나라를 구린내 나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