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싫증날 때
인생이 싫증날 때
  • 경남일보
  • 승인 2012.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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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원 (한국폴리텍대학 창원캠퍼스 교수)
초지일관(初志一貫)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먹은 마음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중도에 싫증이 나서 수정하거나 포기해 버리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밀고 나가는 데는 열정(Passion)이라는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그 열정을 지속적으로 발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제의 열정이 오늘에는 싫증 때문에 무력감에 빠져 도무지 일어나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열정이 식지 않도록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화장터에 가보라.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굴뚝이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보는 순간 ‘아! 저것은 시체를 태운 연기가 아닌가?’ 냄새가 코에 닿지도 않았는 데도 만감이 교차하며 심각한 생각들이 몰려온다. 그것은 식어진 열기를 다시 회복하는데 촉진제의 역할을 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화장터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면 가족들의 흐느낌과 통곡소리를 듣게 된다. 그 울음은 후회와 안타까움과 아쉬워서 우는 소리다. 어떤 사람들은 ‘통곡보다 더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고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식어진 열정을 회복하기 위해 통곡하는 사람과 함께 울어버리면 어떨까. 관을 화구에 올려 놓는 순간 가족들은 관을 부여잡고 대성통곡하며 한동안 몸부림친다. 한 시간 후, 화구를 열면 타다 남은 뼈들이 보인다. 어느 화장터 인부가 “잘난 사람 뼈나 못난 사람 뼈나, 뼈는 똑같다”하던 말이 기억난다. 그는 그것을 주섬주섬 집어서 절구통에 넣고 아무 표정도 없이 빻는다. 그리고 뼛가루를 창호지에 싸서 무덤덤하게 가족에게 건넨다. 아직 온기가 남은 뼛가루 봉지를 받아든 가족은 이제는 체념한 듯 흐느끼며 뿌리러 간다. 이 순간 인생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인생의 남은 유통기간을 생각하며 싫증 때문에 식은 열정을 회복하기 위해 결단한다.

또 어느 날 삶이 삭막해졌다. 의욕은 도망가고 마음에는 냉기만 가득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때문이었다. 이것을 날릴 방법은 없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서 ‘어시장’으로 갔다. 사람 사는 냄새가 진동했다. 하반신 장애인이 애절하게 구걸하는 모습, 생선장수의 핏대 세운 고객 부르는 소리, 노점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주름선이 선명한 채소장수 할머니, 요란을 피우며 급히 지나가는 짐꾼들의 소리, 펄떡펄떡 뛰는 생선을 흥정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어시장은 백가지가 넘는 삶의 애환이 담긴 인생학교였음을 알았다. 그곳에는 의욕과 적극성 그리고 성실과 인내, 무질서속의 질서, 행복도 진열되어 있었다.

삶이 싫증날 때 화장터에 가보라. 심오한 인생을 배우게 될 것이고, 인생이 무미건조할 때 어시장에 가면 싫증은 한낱 사치에 불과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인생학교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교육한다. 그 보상으로 열정이라는 에너지원을 공급받게 될 것이다. 가끔은 그 학교에 입학하여 인생을 배우자.

/한국폴리텍대학 창원캠퍼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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