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대통령?
무소속 대통령?
  • 경남일보
  • 승인 2012.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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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재 (객원논설위원, 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회장)
사람들은 형식적 공교육의 초기단계인 초등학교에 입문할 때부터 민주 혹은 민주주의에 대한 용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체득하게 된다. 적어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 그만큼 민주주의가 합리적이며 이상적 정치이념이라는 방증이다. 그런 맥락으로 인류가 사는 지구상에 지금까지 발견된 최상의 정치시스템이 민주주의라는데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그 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 정당정치라는데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당이라는 이념 결사체를 기반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말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러한 정당정치에 대한 실망감이 한계점에 달함으로써 정당혁신이 시대적 과업이 되었다. 불과 10년 전까지 정당의 대표로 제왕 같은 ‘총재’라는 지위가 존재하였고, 옛날 여당의 경우는 일개 사무처 간부에 불과한 사람이 지방장관을 포함한 기관장의 인사까지 관여하는 ‘끗발’도 유지됐던 시절도 있었다. 또 정당에 몸담고 있는 전·현직 국회의원을 포함한 적지 않은 정치인들의 비리가 지천으로 발각되기도 하여 정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하게 만들었다.

상상이 가능한 이상

행정부를 비롯한 다른 공직과 비교하면 많은 분야에서 덜 정교하고 어정쩡한 구석이 많다는 점도 정당불신의 핵심요소로 작용한다. 여기에 효율적이지 못한 온갖 부정적 행태와 고비용을 수반하는 형식주의가 국민 눈높이에 한참 뒤떨어짐에 따름일 것이다. 그래서 탈 정당, 즉 무소속 집권자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솟구치게 된 것으로 그 흐름이 정리된다. ‘안철수 현상’ 근원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상이지 결코 실현되기 힘든 기대다. 합당하지도 않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일이다. 5000만 국민이 한데 모여 의논하고 토론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당 기반 없이 대통령이 곧장 국민과 소통하면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국정을 수행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정당을 기반으로 하는 대의기관인 국회의 동의나 협력 없이는 국정의 어느 구석도 온전할 수 없다. 무소속 집권이 아닌, 정당을 더 처절하고 더 비장한 각오로 개혁하여 민주주의를 더 합리적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말로 환언된다.

정당은 정부나 자치단체와 달리 국민의 접근이 매우 용이하다. 공기관의 출입에 까다로운 절차와 관문이 정당에서는 상대적으로 간소하며 편하다. 공천시기 등 특별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정당출입에 신분증을 보자거나 출입기록을 요구하지 않는다. 해결은 차치하더라도 민원제기가 편하다. 문턱이 높지 않아 잘만 운용하면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달함으로써 대의정치를 실천하는데 필수재 역할로써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정당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바탕돌이 된다. 특정현안이 발생하면 행정부에서 적절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국회의 동의 혹은 협력을 받으면 능사가 될 것 같지만 부작용 발생의 소지가 늘 있다. 민심과 민원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 기대에 못 미치고 미흡하여도 그것이 정당의 기능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국민에게 심판받는 것이다. 이른바 정당에 의한 책임정치의 원리다. 정당 없이 국민과 맞소통하여 여론의 굴절을 방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국가공동체라는 복잡다기한 역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진성에서 나온 것이다. 국민의 선택에 따라 여당과 야당으로 편재된 정당 간의 치열한 찬반논란과 국회에서의 처절한 갑론을박을 거쳐야 민주적 정책과 법률이 탄생되는 것이다.

실현이 어려운 현실

아이러니가 있다. 정당정치를 경험하고 민주주의의 이념과 실체를 너무나 잘 알면서 무소속으로 대권을 지향하는 후보의 캠프에 몸담거나 지원하고 있는 명망가와 유력인사가 많다. 발상전환으로 정치의 틀을 바꿔보자는 기치로 무장한다. 정당의 기반이 없어도 얼마든지 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어필한다. 모두가 그렇지 않겠지만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따름이라는 건방진 진단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특정 무소속 후보의 역량과 지도력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상에 단 한건의 사례도 존재하지 않은 무소속 집권이라는 불확실한 기대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회의가 있다. 순진무구한 국민을 시험대의 수단으로 여기는 발상이라면 불경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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