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11>
오늘의 저편 <211>
  • 경남일보
  • 승인 2012.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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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라자로 마을이 생겼대요.”

본론을 꺼내고 만 형식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게 뭔데?”

상대의 말뜻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지만 발성기관에서 튀어나온 말은 이랬다.

“나환자들을 잘 치료해 준다고??.”

“그러니까 날더러 그곳으로 가라는 말이지?”

진석은 형식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환자인 주제에 나환자 취급을 받는 건 정말 싫었다.

“외국에서 온 선교사가 직접 나환자들을 따뜻하게 잘 보살펴 준대요. 그리고 여기서 가까우니까 집을 멀리 떠나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을 것이고요.”

형식은 기껏 형을 생각해서 달려왔다는 말까지 굳이 덧붙였다.

“그렇게 좋으면 너나 가.”

어처구니없는 말로 대꾸한 진석은 스스로 되새김질하지 않아도 어이가 없는지 자기 자신에게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돼.”

말문이 막혀버린 형식은 멀건 눈으로 진석을 보았다.

“너 마음을 모르는 건 아냐.”

피부병 약을 적지 않게 대어 온 형식에게 너무 했다 싶어서 일상적인 목소리로 정리했다.

“좋은 외제 약으로 치료도 해준다나 봐요.”

“치료된 사람이 있대?”

숨도 쉬지 않고 반문하는 진석의 눈에서 불이 번쩍였다.

“그, 그것까지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나은 사람이 있을 거예요.”

형식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그으래?”

진석은 완쾌된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대신 ‘성라자로’에 대해선 한번쯤 생각해 보겠다는 말은 해주었다.

하루해가 서산너머로 붉은 숨을 거두자 학동마을은 어둠에 잠겼다. 진석은 대문간에서 서성이며 민숙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를 탔다면 지금쯤 읍내 쪽에서 걸어오고 있을 것이었다.

수원시내를 벗어나 학동까지 오는 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인가도 드문드문 있었다. 야트막하긴 하지만 야산까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읍내에 나간 가족이 늦게 오면 등불을 들고 마중을 나가곤 했다.

‘자고 오려나?’

그러나 진석은 목을 가로 저었다. 마중을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민숙이를 혼자 서울에 버려두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 감당하기 힘든 고독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회오리쳐 왔다. 죽음의 유혹으로 이어졌다. 목을 짧게 가로저었다.

‘네 녀석이 할머니께 다녀오면 얼마나 좋겠냐?’

실없는 독백으로 끝날 줄 뻔히 알면서 옆에 있는 점박이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녀석이 진석의 말을 알아들었을까? 앞뒤 없이 귀를 쫑긋거리며 대문으로 다가가선 앞다리를 번쩍 치켜드는가싶더니 문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문을 열어달라고?’

진석은 조심스레 대문을 조금 열어주었다.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문틈으로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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