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풍양속과 선거법
미풍양속과 선거법
  • 경남일보
  • 승인 2012.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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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백 (진주시선관위 사무국장)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위의 슬픈 일과 기쁜 일에 함께하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있다. 어릴 때 동네에서 혼사가 있으면 어머니께서는 메밀묵을 큰 양푼이 한가득 만들어 그 집으로 보내곤 했고, 농번기가 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여럿 모여 오늘은 이집 밭 매고, 내일은 저 집 모내기를 함께하는 이른바 품앗이를 보면서 자랐다. 요즘은 기계화와 함께 농촌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다 보니 품앗이를 보기는 어렵고, 경조사에서도 현금으로 성의를 표하는 것으로 끝나 우리의 전통 미풍양속이 점점 퇴색돼 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공직선거법에서는 정치인이나 그의 배우자는 친족 외의 선거구민이나 선거구민과 연고가 있는 자의 경조사에는 아무리 적더라도 금품을 제공할 수 없게 돼 있다. 처음 공직선거법에서 ‘축·조의금의 상시제한’ 규정이 제정된 경위를 보면 정치인들이 선거구내의 경조사를 모두 찾아 부조를 하다 보니 경제적인 부담이 너무 컸고, 이것이 정치비용 과다로 이어져 결국 ‘정경유착’이라는 폐해를 낳아 이를 해소해 돈이 적게 드는 정치풍토를 만들고자 제정됐다. 시행 초기 미풍양속을 해치는 법이라는 많은 저항과 일부 참 잘 만들었다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경조사 현장에서 정치인들이 얼굴만 내밀고 가거나, 당시 허용됐던 1만5000원 이하의 앨범 등을 전달하고 돌아가면 뒤에다 대고 “그러려면 뭣하러 왔나” 또는 “내가 이것 받으려고 청첩장 보낸 줄 아나”라면서 패대기를 치는 웃지 못할 일들도 있었다. 요즘은 정치인들이 타인의 명의나 사전 당사자를 방문해 인사하는 등 일부 편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선관위에서는 이러한 선거법 위반행위에 대해 다양한 홍보와 단속을 하는데, 미풍양속이라는 오랜 인식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돈 적게 드는 정치풍토 조성과 실정법 준수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에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감히 제언을 드리고 싶다. 먼저 정치인들은 내 집에 경조사가 났을 때 찾아주신 분들로부터 부조금품을 받지 않는 경조 풍토를 먼저 조성해 보자. 국민의 대표로서 애락을 함께해 주신 분들께 혼신의 정치활동으로 보답한다면 내가 받은 부조금품 때문에 부담을 가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민들께서도 내 집의 경조사에 정치인들이 방문한다고 더 빛나는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부담을 드린다는 마음을 가져 주셨으면 한다. ‘역지사지’. 정치인들은 한사람이지만 그 한사람에게 알려오는 경조사는 얼마나 많겠으며, 그 부담은 얼마나 커겠는가. 오히려 내 집 경조사에 많은 고마운 분들이 도움을 주셨는데, 그분들의 뜻을 함께 담아 정치활동에 보태라며 적은 금액이라도 후원을 전달한다면 정치인들은 진정한 봉사를 할 것이며, 깨끗한 정치풍토는 저절로 이뤄지리라 본다.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 미풍양속이 선거법으로 인해 오해를 낳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박용백·진주시선관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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