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그 아련한 향기
향수, 그 아련한 향기
  • 경남일보
  • 승인 2012.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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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륜현 (경남대학보사 편집국장)
향수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화장품의 일종,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아련한 그리움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향수병이란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다들 고향을 그리워하는 병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워할 수 있는 게 어디 고향뿐이던가. 향수라는 뜻에는 사물이나 추억에 대한 그리움 또한 포함된다.

요즘은 그저 집에 대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향수가 밀려온다. 초등학교 때 갔던 소풍, 중학교 시절의 운동회, 고등학교의 야간 자율학습, 어제 만났던 누군가까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집에 대한 향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자립하게 된 오빠와 나로 인해 조금은 쓸쓸해졌을 부모님과 집을 생각하면 괜히 가슴이 저리다. 보고 싶다고 백번 말해도 찾아가지 않으면 그 그리움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다음에’ 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나는 분명 언젠가 후회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향수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서 혼자 감당할 수 없을 거다.

요새 내게 쌓이는 이 향수는 무엇 때문일까. 친하지 않던 먼 친척이 보고 싶고, 어린 날 갔던 큰 절의 부속 암자와 그 안에서 있었던 많은 이들, 내가 있어 좋다고 말해주던 사람들까지 그 종류가 천차만별이어서 갑자기 내가 왜 이러나 싶기까지 하다. 슬슬 졸업반이 된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멀리 가야만 하는 때가, 또다시 누군가와 헤어져야하는 때가 오기 때문인 걸까.

이런 와중에 눈에 띈 조그만 종이봉투가 있다. 받은 편지를 모아두는 나름의 추억상자였다. 그 편지들 중에 하나를 집어 들어 읽었다.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서 웃다가 갑자기 편지를 써준 이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괜히 설레서 이번엔 다른 편지를 꺼냈다. 편지라는 게 때로는 사진보다 더 큰 추억을 안겨준다고 생각한다. 그 장면의 순간이 아니라 편지를 쓰는 내내 내 생각만 했을 상대편이 너무나 귀엽게 느껴지지 않는가.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이렇게나 쉽게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다. 내 안에 나만 있는 게 아니라서, 나를 흔드는 그대가 있어,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말하고 있다. 나도 그렇다. 지금 함께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그립다. 과거를 함께했던 사람들이 그 추억으로 그립다면, 현재 함께하는 이들이 그리운 것은 지금이 추억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만나면 언젠간 헤어진다는 것을 알아서 그래서 지금의 이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다들 소중한 추억이 하나씩은 있다. 추억을 만들자며 작정하고 만나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잊지 못할 추억이 돼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과 이제 곧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그 와중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이 더 중요한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가서 만나고 추억을 쌓고 싶지만, 그게 되지 않는다면 편지라도 쓰고 싶다. 그마저도 안 되면 문자 하나 보내는 게 뭐 그리 어렵겠는가. 한 번 더 만나서 얼굴을 보고, 한 번 더 얘기하며 서로를 알아 가면 추억이 추억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함께 그 나날을 회상할 수 있도록 오늘 조금 더 힘내야겠다.

/김륜현ㆍ경남대학보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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