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12>
오늘의 저편 <212>
  • 경남일보
  • 승인 2012.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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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잠에 빠져 있던 화성댁의 귀에 개 짖는 소리가 걸려들었다. 곤한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뒤척였다.

‘둘이 같이 갔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냥 잠을 자기로 마음을 정했다.

컹컹대던 점박이가 초조히 사립문과 안방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지지대고갯길까지 와서야 민숙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서울에서 이곳까지 쉬지 않고 걸어온 것이었다. 학동 뒷산과 연결되어 있는 오른쪽 산은 흡사 바닥이 보이 지 않는 시커먼 낭떠러지처럼 몸채를 아래로 내려뜨리고 있었다. 엄두가 나지 않는 듯 수원 시내 쪽으로 방향을 잡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민숙은 학동 쪽 산으로 잽싸게 몸을 숨겼다. 밤길을 다닐 때 제일 무서워해야 할 상대가 바로 사람이라는 이야길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정말 우릴 받아줄까요?”

피로에 지친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럴 거야. 걱정하지 마.”

염려가 담긴 남자의 목소리였다.

“우리 식구가 굶지만 않고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여자의 말에 이어 배고프다고 찡얼거리는 사내아이의 소리도 들렸다.

“충식아, 조금만 참아. 이제 다 왔으니까. 응?”

아버지로 여겨지는 남자가 아이를 달랬다.

본의 아니게 남의 이야기를 엿듣고 만 민숙은 그들이 코앞을 지나가고 난 뒤 몸을 일으켰다. 그들의 목적지가 여간 궁금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막연한 짐작이었지만 친척집을 찾아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길 위로 올라서려던 민숙은 그냥 아래쪽을 발로 더듬기 시작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나뭇가지를 붙잡고 늘어지곤 하면서 내려가면 학동 뒷머리가 나올 것이었다. 시린 손은 이제 감각이 없어졌다.

‘다시 길로 올라갈까?’

하마터면 미끄러질 뻔하며 민숙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식은땀이 전신을 훑었다. 다시 올라갈 자신도 없었다.

별안간 점박이가 쏜살같이 사립문밖으로 내달았다.

‘으, 으악!’

어둠속에서 두 개의 빛이 튀겨지고 있는 것을 얼핏 본 민숙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비명을 질렀다. 예전엔 뒷산에 늑대가 있었다고 했다. 아이의 무덤이 있는 곳에선 여우가 종종 발견되었다.

부들부들 떨며 민숙은 궁둥이를 옆으로 슬슬 밀었다. 늑대이건 여우이건 그녀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만약에 나타난다면 맞붙잡고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할 것 같았다.

두 개의 그 빛은 이제 쏜살같이 민숙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느, 느, 늑대다!’

하얗고 동그란 빛이 달려오고 있는 그것의 두 눈에서 튀겨지는 것이 동물의 인광임을 알아차린 민숙은 비명도 제대로 지를 수가 없었다. 살아남기를 갈구하는 자동발생적인 본능의 힘으로 땅을 더듬어 돌을 집었다.

‘컹! 점박아!’

점박이의 소리와 민숙이의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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