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13>
오늘의 저편 <213>
  • 경남일보
  • 승인 2012.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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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왈칵 쏟으며 민숙은 점박이를 힘껏 껴안았다. 따뜻한 녀석의 체온에 핫옷 속으로 깊이 느껴졌다.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다 녹고 있었다. 녀석은 주인의 얼굴을 마구 핥아대기 바빴다.

기어이 진석은 대문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점박이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어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눈을 사방으로 굴려대며 처갓집으로 발소리를 죽여가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새어나오는 불빛이 유난히 따뜻해 보여서일까. 아이와 어른이 함께 지내고 있을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은근히 부러워지고 있었다.

처갓집에선 불빛이 새어나오지 않고 있었다. 원래부터 초저녁잠이 많은 화성댁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던 진석은 방문 앞으로 살그머니 다가갔다. 목소리를 낼 수는 없어서 문고리를 슬쩍슬쩍 흔들며 인기척을 냈다.

‘아니, 어디 간 거야.’

집에 도착한 민숙은 뒷방에 비어 있는 것을 보곤 당황히 측간으로 달려갔다.

‘설마? 마중을?’

벌떡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일단은 친정으로 먼저 달려갔다.

막 잠에서 깬 화성댁이 우뚝 서 있는 사위를 보곤 눈을 의심하며 체머리를 자꾸 흔들었다. 딸이 아직 서울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건 정말 믿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혼자 돌아온 사위가 여간 밉지 않았다. 아직 초저녁인데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는 사람이 이렇게 나다니는 것도 팔딱 뛰다말고 숨이 딱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빨리 안으로 들어오게.”

“아닙니다. 용진 엄마 마중을 좀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글쎄 마중은 내가 갈 테니까 자넨 안에 들어와 있으라니까.”

밤이 깊어질 때까지 숨어 있으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 있겠습니다.”

“무슨 소린가?”

화성댁은 몸을 돌리는 사위의 등을 방안으로 밀어 넣었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마을사람들이 입을 모마 수군거릴 것을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렸다.

흡사 미쳐버린 사람처럼 그렇게 화성댁은 사립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사위를 방안에 가둬 두었으니 딸을 마중하러 가야 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험한 세상이었다. 어둠 속에 혼자 걸어올 딸을 생각하면 가슴을 인두로 지지는 듯 화끈거리고 쓰라렸다.

저만치에서 오고 있던 민숙이가 달음질을 치는 화성댁을 보았다. 어머니를 부르며 따라갔다. 점박이는 앞장서서 달렸다.

등 뒤로 들려오는 딸의 목소리에 감전된 화성댁은 몸을 뒤로 사납게 돌렸다.

“이년아, 이제 오냐? 이제 와?”

반가움에 겨워 딸을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어머니, 잠깐만요. 제 말씀 좀 들어보세요.”

오로지 남편의 행방이 궁금했던 민숙은 화성댁의 귀로 입을 가져갔다.

“김 서방 우리 집에 와 있다.”

이젠 직성이 풀렸는지 화성댁도 덩달아 딸의 귀에다 대고 소곤거렸다.

그 말을 들은 민숙은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앙상한 그 가슴이 갓 군불을 뗀 아랫목처럼 따뜻했다.

화성댁은 딸을 깊이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한 번 더 귓속말로 물었다. 서울 갔던 일 어떻게 되었느냐고.

‘허허, 도로 아미타불이 된 거야? 차라리 잘 되었어. 잘 되긴 뭐가 잘 돼? 알 건 알아야지.’

딸의 대답을 들은 화성댁은 속으로 군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앞장서서 가던 점박이는 꼬리를 치며 화성댁의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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