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에도 사랑과 사연이
낙엽에도 사랑과 사연이
  • 경남일보
  • 승인 2012.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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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사람들은 말과 행동으로 의사전달을 하지만, 동물은 소리로 몸짓으로, 초목은 스스로 짓는 몸짓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제 나름의 방법으로, 제 나름의 수단으로 표현하고 의사를 소통하며 살 것이다. 움이 자라서 신록으로 고와지던 나뭇잎도 그 삶의 환희 외에도 갈등과 고독과 분노와 고통을 짙푸른 녹음의 빛깔로서도, 바람에 저마다의 몸짓으로서도 나타내어 왔을 것이다. 이 가을 저 타는 목마름으로도 타오르지 못한 불길을 제 가슴에 제 살에 제 뼈에 불 질러 붉게 젖어 물이 든 단풍잎새. 어찌 단순히 계절의 변화라고 돌려 버릴 수 있으랴.

참으로 아름답고도 처절한 붉은 단풍잎이라지만 분명헌건 하나의 생명으로서 작고도 진솔한 심장이 아니던가. 상처진 한 장의 낙엽에도 한 생애 목숨이 거쳐야 했던 애환이 그대로 담겨져 있을 것이며, 그것은 잡혀지지 않는 그리움이나 바람의 흔적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천둥치고 번개 치던 울분과 증오일 수도 있고, 먹구름이 쏟아 붓던 장대비의 원한도 자국 졌을 것이다. 지난여름 이름 모를 산새의 노래도, 이름 없는 벌레의 신음소리조차도 푸른 잎새마다 붉게 검붉게 멍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사랑도 미움도 인간만이 누리는 것은 아닌 듯. 벌레 먹고 찢겨진 가을잎새라도, 그가 거쳐 온 삶의 노정이 어떠했던가에 따라, 물이 든 단풍의 빛깔도, 잎새의 모양도 크기도 서로 다를 것이다. 한 나무의 잎새끼리라도 그가 처한 가지의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생애를 거쳐 올 수도 있다는 것이거늘. 따라서 물든 단풍빛깔도 서로 다를진대 하물며 서로 다른 장소에서 자란 나무끼리라면, 아무리 같은 종류라 한들 그 차이, 그 운명이야 말해서 무엇 하랴. 운명이란 아마도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초목의 운명, 나뭇잎의 운명, 모두가 절대한 목숨의 것이 아닌가.

작은 단풍잎 한 장에 집약(集約)되고 응축(凝縮)된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탐하지 않는 무욕(無慾)으로, 단풍잎새 하나로 전부인 무욕의 모습으로 그 모습에 비쳐진 진실과 경건이어야 참된 사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 없듯이, 영혼이 영혼을 소유할 수 없듯이, 사랑도 사랑을 소유할 수 없을 듯. 아니, 사랑이란 소유가 아니라 그저 혼자서 타고 물이 드는 낙엽과 같은 것일 듯. 참된 사랑은 무욕의 낙엽으로 아름답게 무너져 버리는 것이어야만 될 듯. 자신의 모든 혼을 저 홀로의 사랑으로 물들이고 만 목숨의 마무리. 붉은 낙엽 한 장과 같아야 하리라.

단풍은 낙엽 되고 마침내는 탈색된 가랑잎이 되고, 뒹굴고 찢겨지고 바스러져,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 흔적조차 없어지는 숭고함이여, 오직 그대의 아름다움에 삶에 대한 구차스런 미련은 사라지고, 사랑의 참모습에 묵도할만한 경건함과 숭고함만을 느낄 뿐이다. 모든 사랑은 아름답고 숭고하진 않겠지만, 그러나 낙엽과 같이 아름답게 승화되는 사랑을 이 가을날 그 누군들 아니 그리워하랴. 우리의 삶도 다만 무욕으로 생을 마감한 붉은 낙엽 한 장 같아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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