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통한 구원,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음악을 통한 구원,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 경남일보
  • 승인 2012.11.0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숙향 (시인, 악양초등학교 교사)
얼마 전 지역에서 학생 합창합주대회가 열렸다. 필자는 소규모 학교에서 멜로디언, 아코디언 등 기본악기를 장만해 조그마한 기악합주단을 만들어 대회에 참가했다. 오랜 세월 합주단을 이끌어 오면서 ‘아이들이 진정으로 무대를 즐기게 하고, 관객들의 귀와 눈을 환하게 하여 감동을 선사하는 공연’으로 이끄는 데 목표를 두고 지도에 임해 왔다. 올해 연주곡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와 ‘오페라의 유령’이었는데, 대회에 참가한다기보다도 연주회처럼 오페라 가면과 의상, 동작 퍼포먼스를 가미한 공연을 선보였다. 성취의 보람과 감동의 무대를 갖게 한 덕인지 올해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따라잡지 못한다’는 속설을 입증한 것이다. 합주단엔 틱 장애아도 포함돼 있었는데 보람차고 행복해 하며 한층 밝아진 아이가 음악치료 효과도 보았으리라고 짐작된다. ‘엘 시스테마’처럼 아이들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세계로 이끈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엘 시스테마’는 남아메리카 북부 카리브해에 인접한 베네수엘라의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을 일컫는 말로, 베네수엘라에서 35년째 진행되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담은 실제 다큐멘터리 영화이기도 하다. 15세 정도의 나이면 마약에 찌들고 함부로 총기를 휘두르는 아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이 택한 방법은 치안유지도 총기사용 금지도 아닌 ‘오케스트라’ 구성이었다. 그들이 처한 현실로는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라는 음악으로 무엇보다도 삶의 즐거움과 스스로를 행복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게끔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1975년 어느 허름한 창고에서 전과 5범의 소년들이 포함된 11명의 소년단원들이 바로 그 기적의 첫 신호탄이었는데 이렇게 시작된 ‘엘 시스테마’가 현재는 베네수엘라 전역에 걸쳐 약 184개에 이르는 센터를 운영하며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다. 창립자인 아브라우 박사의 신념은 범죄로 만연했던 한 국가와 한 사회 그리고 그 속에 자리하는 한 개인을 구하는데 성공했다. 배 고프고 가난한 빈민가 출신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통한 인격형성과 정서함양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꿈을 키워 사회에서 어엿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한 것이다.

영화의 공연에서는 클래식 공연의 정적인 무대모습 대신에 파트별로 일어나 신나게 합주하기도 하고 연주자가 무대 중앙에 나와 춤을 추면서 관객들의 흥을 돋운다. 객석을 가득 메운 까무잡잡한 피부의 반바지 차림 아이들도 흥에 겨워 자연스레 무대와 하나가 된다. 음악이 주는,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무대와 객석이 하나로 이뤄낸 황홀한 경험이며 마법의 시간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모든 사회문제는 배척하고 외면하는 데서 더 심각해진다’는 인식의 바탕 위에서 개인과 기관 그리고 정부의 노력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 기적의 오케스트라는 음악사업이 아닌 사회사업의 일환으로 어떤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회피하지 않으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회를 움직여 갈 수 있는 힘을 보여준다.

학교폭력으로 떠들썩한 현시점에서 ‘한 사람이 꾸는 꿈은 꿈에 지나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같은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를 떠올려본다.

/최숙향·시인·악양초등학교 교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