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형환 (진주소방서장)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긴박한 현장. 그리고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가는 사람들, 바로 소방공무원들이다. 일단 화재출동 사이렌이 울리면 소방관들은 신속하게 자기가 맡은 역할대로 움직인다. 소방차에 탑승해 화재현장의 규모 및 특성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인명검색 및 진압활동 등 일련의 소방활동을 하기 위한 개인 안전장비를 하나둘씩 갖추며 불 속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자기 몸을 점검한다. 그래서 화재현장으로 가는 소방관들은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또한 차량 정체, 앞에서 비켜주지 않는 얌체 차량들, 불법 주정차 차량들로 인해 화재현장으로 가는 시간이 늦어질수록 인명피해 및 재산피해액이 상상을 초월하여 증가하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중앙선을 넘나들며 화재현장으로 달려간다. 2인 1조로 현장에 들어가야 하지만 부족한 인원 탓에 혼자서 관창을 들고 불길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화재의 위험성과 여러 가지 변수들로 인해 화재현장으로 뛰어들어 가야 하는 소방관들은 어쩔 수 없이 생과 사를 넘나드는 사선에 서야 한다. 지난 5년간 발생한 소방공무원 공사상자는 1600여명에 달한다. 한 해 평균 300명 이상이 소방활동 중 죽거나 부상을 당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소방관들은 화재현장에서 모든 사람들을 구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소방관이 10여년 전 산후조리원 화재사건 때 구하지 못한 산모와 아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말이 기억난다. 살려낸 생명보다 살려내지 못한 생명에 대한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 소방관들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처럼 화재진압을 위해 현장에 들어간 동료 소방관을 잃는 슬픔도 겪게 된다. 동료를 직접 잃은 것은 아니지만 같은 소방관으로서 우리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 슬픔과 공포는 크게 다가온다. 목숨을 담보로 한 직업이 그러하듯, 많은 소방관들은 이렇게 동료를 잃은 슬픔과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절망하게 된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며 서로의 몸에 묻은 숯검정을 털어주며 때로는 가족보다도 더 가까이에 와 있는 동료들. 그렇기에 동료를 잃었을 때 밀려오는 슬픔의 무게는 너무도 가혹하게 서로를 짓누른다. 하지만 소방관들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더라도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자기 몸을 사리지 않고 맨 먼저 진입하고 맨 마지막으로 나온다.
동료를 잃었을 때의 슬픔이나 자신의 가족만을 생각한다면 이 일은 오래 할 만한 일이 못된다. 하지만 누군가는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임을 알기에 오늘도 용기를 낸다. 잿더미가 된 집 앞에 주저앉아 우는 이의 허망함을 지켜보며 때론 화재현장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온 가족들이 얼싸안은 모습을 지켜보며 느끼는 감동의 순간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하는 이 일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인정받기 위해 이 일을 하는 소방관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쓴 힘든 업무에도 우리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시민들의 작은 관심과 격려가 있다면 이 모든 어려움과 슬픔을 이겨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자기의 몸보다 위험에 처한 시민들의 인명구조 및 재산피해 감소를 위해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 가는 우리는 소방공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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