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18>
오늘의 저편 <218>
  • 경남일보
  • 승인 2012.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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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속에서 눈썹을 그리고 있던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지를 집어 든 민숙은 불을 껐다.

달빛을 안은 창호지문에 얼핏 비친 가지가 유난히 커 보였다. 남편의 남근을 눈앞으로 끌어온 민숙은 가지를 이불 속으로 넣었다.

잠자리의 얇은 날개에 높은 하늘이 비치기 시작했다. 하늘에선 그 날개에 땅이 빤히 비치고 있을까. 그토록 무덥던 여름은 뒤풀이도 제대로 못한 채 쌀쌀한 갈바람에 쫓겨나고 있었다.

뒷산으로 지지대고개에 오른 진석은 먼동을 맞이하고 있었다. ‘성 라자로 마을’을 찾아가고 있었다. 시야에 펼쳐지기 시작하는 파르스름한 기운이 보는 이로 하여금상쾌한 기분을 자극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의 얼굴은 복잡해 보이기만 했다.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뒷방으로 달려간 민숙은 텅 빈 방안에 던져져 있는 종잇조각을 발견했다.

‘잠깐 어디 좀 갔다 올게. 오전 중으로 꼭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시 말하지만 꼭 돌아올 거야.’

민숙은 안심 반 불안 반의 얼굴로 종이의 내용을 보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지만 불안감이 절실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건 아니었다.

‘어딜 건 거지? 딴 생각을 한 건 아닐 거야.’

남편의 은신처인 뒷산의 굴로 가 보려다 친정으로 발길을 돌리며 입속말로 자신을 달랬다.

“식전 댓바람부터 웬일이냐?”

맥없는 얼굴을 사립문 안에 들이미는 딸을 보며 화성댁은 뜨악한 얼굴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서로 얼굴을 보고는 하고 있지만 번번이 딸의 낯빛부터 살피게 되는 것이었다.

“밥 한술 얻어먹으려구요.”

민숙은 남편의 소식부터 까발리려다 뜸을 들였다.

“또 서울 갔냐?”

대뜸 그렇게 물었다. 밥 타령부터 하는 딸을 보면서 사위는 의사였던 그 친구를 찾아간 것이 틀림없다고 그렇게 점괘를 낸 것이었다.

“오전 중에 돌아온다는 걸 보면 서울 간 건 아닌가 봐요.”

부지중에 오른손 엄지손톱을 깨물었다.

“뭐라고?”

화성댁은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하필이면 깜박 잊고 있었던 간밤의 꿈자리까지 생각나고 있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은 없었지만 그냥 이것저것 시끄러웠던 것 같았다.

“조용하세요. 김 서방 돌아올 거예요.”

반사적으로 어머니의 입을 막으며 민숙은 속삭이듯 말했다.

“이년이 간땡이가 부었냐?”

그러나 화성댁은 그냥 어이없이 웃고 말았다.

‘내 사위 본 사람 없느냐고 울며불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수도 없는 판국인데 웃어야지 어쩌겠어?’

딸 보기가 좀 뭐해서 실없쟁이가 되어버린 그녀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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