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잎의 진실
단풍잎의 진실
  • 경남일보
  • 승인 2012.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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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무지개를 잡기 위해 쫓아가듯 헛된 허상(虛像)을 두고 열정을 바쳤던 지난여름 동안 가슴 가슴마다 무성히 우거진 허세도 교만도 속절없는 붉은 낙엽으로 돌아가 누울 수밖에는 없는 것인가. 한 생애를 소중히 다스려 온 최후의 모습이 이렇게 기막히고도 황홀한 빈손이면서도 선홍의 빛으로 생애를 마무리 하는 그 여윈 모습에 스며있는 것은 순수와 정직과 진실의 빛깔이 아니고 무엇이랴. 벌레 먹어 길가에 떨어져있는 구멍 뚫린 붉은 단풍잎일지언정, 저 붉은 진실이 하찮은 나뭇잎에 불과하다고 우리가 감히 외면 할 수 있겠는가. 저것이 어찌 생각이 없는 물체라고 말 할 수 있으랴.

무심한 눈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가을의 혼령이여, 그냥 지나치려던 우리들의 발걸음을 왜 멈추게 하고, 비켜가도록 종용 하는가. 그대를 보노라면 살아 있는 목숨 이상으로 느껴지면서, 표현하는 감정이란 감정을 가장 진실되게, 가장 숭고하고 경건하게 한 몸으로 나타낸 듯. 사랑과 진실함의 일체됨에 그저 고개 숙일 뿐이다. 붉은 낙엽 한 장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고 전달되듯이. 그 간절한 모습으로 맞이하는 최후를. 비록 붉게 타드는 듯 제 마음 제 느낌을 송두리째 제 몸에 새기고 물들인 그대는, 한 생명의 절정이자 최후이며, 붉은 절규이자 허무이고, 절망이자 진실인 것을.

굽이굽이 돌아치며 흘러내리는 청아한 물소리에 잠시 고개 젖혀 지리산 대원사 계곡의 단풍을 다시 보노라면 아무런 소원도 없이 정결하고도 경건한 자세가 되어 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붉은 단풍에 시선을 꺾으면, 우리도 가을 낙엽이 되어가고 어쩌면 이것도 사랑이다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득 사랑이란 한 장의 붉은 단풍처럼 경건해야 할 것일진대, 진실로 진실된 사랑이라면 어째서 달디단 가을 열매처럼 탐욕스러울 수 있겠는가. 원하건대 사랑은 오직 아름답고 순수해지고 겸허해지는 그런 모습이기를 바라자.

찬바람 불고 서리 치면 경건함을 느끼게 하는 단풍의 계절도, 앙상한 빈 가지만 남겨 둔 채 떨어지고 흩어져서 결국 진실만을 남겨두겠지. 그러나 그 진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경건함과 숭고함만은 절망이 아니라 어쩌면 순수한 기쁨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에서 기쁨을 느낀다면 이 어찌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일이 아니랴. 때론 가을에 취하여 기쁨으로 나뒹구는 낙엽이 되어 가을 강물이 길을 열며 흘러가는 감동, 자연의 변화와 사람의 생에가 무엇이 다르리까.

봄철 황홀했던 꿈들이 이 가을날 허망스런 종말의 아픈 뉘우침과 눈물의 기도밖에 할 수 없지만, 낙엽 한 장만큼 순수해지고 겸허해지자. 인생은 유행 따라 이것저것 지분거릴 만큼 길지 않은데 사람들은 짧은 인생을 만년이나 살 것처럼 결단코 나만은 죽지 않고 오래 오래 살 것처럼 욕심 아니 부려야 하는 것을. 어느 날, 버릴 것 버리고 잃을 것 다 잃으면서 결국 빈손으로 떠나야 하는 몸일진대, 이 모든 것이 가을날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단풍잎의 진실, 그것과 인생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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