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20>
오늘의 저편 <220>
  • 경남일보
  • 승인 2012.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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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팔댁이 딱 마주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민숙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흥, 기찬지 기어 다니는 찬지 툭하면 늦게 오고해서요.”

나팔댁은 새벽기차를 타려고 역에 갔다가 헛걸음을 하고 왔다고 수다스럽게 말하곤 오후에 복덕방에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고 했다.

“서울로 이살 가려구?”

화성댁은 귀가 번쩍 뜨이는 얼굴로 반문했다.

“집을 하나 사 놓으려구요.”

나팔댁은 달동네 집이라도 서울 물건을 사 놓아야 나중에 큰돈이 된다고 덧붙이며 어지간히도 잘난 체를 했다.

“아무튼 재주 좋은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초조한 속을 숨기며 우선은 맞장구를 쳐 주었다.

“재주랄 것까지야 있겠수?”

서둘러 산에 오를 기세인지 나팔댁은 치맛자락을 착 거둬 올려선 야무지게 거머쥐고 있었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우.”

도리 없이 배웅인사를 하고 만 화성댁은 별안간 생각이 난 듯 뒷산에 떼강도가 숨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에엣?”

나팔댁의 얼굴색이 하얘졌다.

“아, 글쎄 지지대고개를 넘어가던 소장수가 강도를 만나 소 판 돈을 다 털렸다고 하지 않겠수?”

화성댁은 숨도 쉬지 않고 각본에도 없는 이야기를 재빨리 엮었다.

“왜 이제 그 말을 해요?”

산을 오르던 나팔댁은 어깨로 진저리를 치며 도로 내려왔다.

“나도 주워들은 이야기라서??.”

화성댁은 입을 쑥 내밀며 상대의 눈치를 살폈다.

“주워들었거나 말거나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겠어요?”

나팔댁은 속담까지 엮으며 마을 앞쪽으로 내려갔다. 숫제 경험담을 맛깔스레 늘어놓듯 강도 코가 얼마나 별난지 돈 냄새는 귀신같이 맡더라는 말까지 등 뒤로 흘리며 궁둥이를 흔들었다.

남자 주먹 크기의 살덩이가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나팔댁의 엉덩짝을 보며 화성댁은 픽 웃었다. 민숙은 십년감수했다는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 라자로 마을’ 입구까지 간 진석은 쭈뼛거리고 있었다. 눈에 바로 들어오는 십자가를 보면서 공연히 마음이 엄숙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형식에게 처음 이곳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된 그때는 무조건 화를 냈다. 내심 줄곧 이곳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진 못하고 있었다. 이곳으로 들어와 버릴까 하는 생각도 시시때때로 뇌리를 스치곤 했다.

마을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한 발짝씩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던 진석은 흠칫 놀라며 그 자리에 우뚝 섰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문을 보았고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까지 본 것이었다.

‘의사겠지?’

새벽을 지키는 그를 무조건 의사라고 판단한 진석은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갔다. 설레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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