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진주 축구인' 파란만장 인생이야기
'영원한 진주 축구인' 파란만장 인생이야기
  • 임명진
  • 승인 2012.11.14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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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축구열전> 조광래 감독 (상)
 
 
 
#진주가 낳은 축구스타 조광래는 현역시절 자로 잰 듯한 정확한 패스의 달인으로 통했다. ‘컴퓨터 링커’라는 닉네임이 늘 붙어 다녔고 아시아 최고의 미드필더로 명성을 날렸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을땐 진주사람인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가 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경기에서 질때도 질책 대신 응원을 보냈다.

“축구선수중에 함수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조광래 밖에 없을 껄”하시던 동네 어르신들의 자부심은 차치하고라도 조광래는 이처럼 ‘영원한 진주의 축구인’이다.

#조광래 감독이 고향 진주로 돌아왔다. 세월의 흔적을 다 지울수는 없었지만 늘 그렇듯이 웃는 얼굴이 소년 같았다. “무거웠던 어깨의 짐을 훌훌털고 고향에서 후배를 양성하는 것이 마지막 꿈”이라는 조 감독. 그와의 인터뷰가 설레기도 했지만 행여 아픈 상처를 다시 꺼집어 낼 수도 있어 조심스러웠다. “이제 와서 뭐 말 못할게 있겠어”하는 조 감독의 초탈한 한 마디에 용기를 가졌다. ‘진주의 축구 영웅 조광래’가 있기까지 그의 파란만장했던 축구인생을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솔직담백하게 전달한다.

◇아시아 최고의 미드필드 조광래 프롤로그

조광래는 축구선수로 큰 체구도 아닌데도, 탁월한 패싱력, 감각적인 축구 센스, 악착같은 승부근성을 갖춘 미드필더로 선수시절 그 명성을 떨쳤다.

진주고, 연세대를 거쳐 포항제철(현 포항)과 대우로얄즈(현 부산)에서 활약했다.

연세대 시절 21살의 나이로 국가대표로 선발, 1978년 아시안 게임 우승,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출전, 서울 아시안게임 단독우승에 일조했다. 통산 80회의 A매치에 출전해 12골을 기록하는 등 아시아 최고의 미드필더로 군림했다.

그런 그에게 컴퓨터 링커, 독일병정, 악바리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공부도 엄청, 축구도 엄청 잘했던 엄친아

조광래 감독은 진주중고등학교 출신이다. 당시 진주중고등학교는 시험을 거쳐 입학하던 시절이다. 축구 특기생이 아닌 시험을 쳐서 이 학교를 입학한 것 자체만으로도 나중에 축구팬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중학교도 시험을 치던 때였으니까, 진주중은 축구부가 없지만 명문으로 유명한 학교였고 당시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갈까 고민 하고 있는데, 글쎄, 반 친구녀석이 진주중 시험을 친다고 하도 하도 자랑을 하길래. ‘에잇 그럼 나도 진주중학교 시험을 볼거야’ 하고 오기로 시험을 봤는데 합격을 했어”

당시 축구부가 없는 학교로 진학했는데 어떻게 축구선수로 발을 들여놓았을까?

“그럼 축구는 언제부터 축구를 시작하신 건가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항상 수정동 골목길에서 축구를 하면서 놀았지. 집 담벼락을 무대 삼아 컨트롤, 볼 드리볼을 해가며 하루를 보냈어. 그러다 봉래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어. 6학년때는 주장도 맡고 대회 우승도 하고 경남에서는 나름 축구는 조광래가 제일 잘한다는 말까지 들었어”

공부도 운동도 잘했으니 요즘말로 그 시절엔 ‘엄친아 조광래’였던 셈이다. 공부도 축구도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기싫어하는 악착같은 성격 덕분”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 부터 남들한테 지길 싫어해 악착같이 공부했지, 그래서 반장도 됐고…”

축구부가 없던 진주중학교로 진학한 그는 축구를 잠시 접었다고 했다.

“진주중학교로 진학했을때 사실 후회도 많이 했어. 항상 머릿속에는 ‘축구’란 단어가 맴돌았으니까. 친구들과 ‘머끌내기’(먹을것 내기)를 하는 걸로 위안을 삼았지”

항상 조 감독과 한편인 팀이 이기다 보니 그때 별명이 ‘머끌내기 대마왕’이었다고.

축구를 하고싶은 맘은 굴뚝 같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처지에 고민하던 그는 암튼 또 다시 시험을 쳐 진주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됐다.

◇고등학교 진학후 본격화된 축구 인생

축구를 잠시 접었던 조 감독은 진주고로 진학해서 다시 운명처럼 축구와 맞닥뜨리게 된다. 봉래초 시절 함께 축구를 했던 친구들이 특기생으로 진주고에 입학을 했고, 조광래의 축구 실력을 잘 알고 있던 그들이 축구부 감독에게 그를 강력히 추천한 것이다.

“하루는 교장실에서 나를 부르더라고. 너 다시 한번 축구를 해 볼 생각 없냐고.”

“그래서요?”

“어쩌긴 안 그래도 축구 하고 싶어 미치겠는데, 얼른 해 보겠다고 했지. 그게 바로 고1 겨울방학 직전이야”

만 4년 만에 다시 축구를 시작한 조광래. 하지만 다시 시작한 운동은 체력에서 버거웠다. 그때부터 매일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해 비봉산을 뛰어 다녔다. 악착같이.

“한 6개월 뛰고 나니 이제는 선착순을 해도 3등 안으로 들어왔어. 원래 드리볼은 자신 있었고, 그때부터 그냥 주전으로 뛴거지”

조광래는 주장이던 3학년 무렵, 미드필더로 맹활약하며 진주고를 전국대회 3연패 반열에 올려 놓았다.

축구실력을 인정받아 연세대로 진학한 조광래는 60년대 영국축구를 휩쓴 맨유의 전설 ‘조지 베스트’의 경기 녹화 비디오를 접하면서 축구에 대한 또 다른 눈을 뜨게 됐다.

“충격적이었지. 그냥 패스면 패스, 드리볼이면 드리볼, 뭐 하나 부족할 게 없는 선수였어. 오직 그 선수만이 생각치도 못할 패스를 만들어 내는 거야”

그의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잔디가 깔린 무덤 훈련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지베스트가 조광래 감독의 멘토인 셈이다.

연세대 재학시절인 75년, 21살의 나이로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A매치 통산 80경기에 출전해 12골을 기록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당시에는 실업팀인 포항제철을 거쳐 대우로얄즈에 입단했다. 그리고 슈퍼리그의 출범과 함께 83년도 대우로얄즈에서 프로선수로서 활약했다.

프로무대에서 조광래는 자로 잰 듯한 정확한 패스와 남다른 패싱력으로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을 얻었다. 악착같이 뛴다고 해서 악바리, 독일병정으로도 불렸다.

86년은 그에게는 최고의 해였다. 멕시코 월드컵 경기에 출전했고, 서울 아시안 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드라마 같은 결승골을 터트렸다.

“금메달이 확정되니깐 동료들이 감독 보다 나를 먼저 행가레를 치더라고. 웬줄 알아. 나때문에 군 면제된 애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거지. 하하”

조광래는 그 경기를 끝으로 현역 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

아직도 그 경기가 기억에 남아. 그 경기로서 선수생활의 모든 것을 마감하면서 선수로서의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고 생각해. 축구선수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순간에 은퇴를 했으니깐”(대표팀 감독시절 등 못다한 이야기는 하편에서)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조광래 감독 약력

출생 1954년생(진주시 수정동)

학력 진주봉래초-진주중-진주고-연세대

선수경력 포항제철(현 포항)-대우로얄즈(현 부산), 79년 방콕아시안게임 메달. 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표 선수, 86년 서울아시안게임 금메달. 안양LG 치타스 우승·프로축구 최우수감독상(2000년)

지도자경력 대우 로얄즈 코치·감독, 안양LG(현 FC서울)감독, 경남FC 감독,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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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2015-12-18 22:59:59
조강래는 진주축구후배들을한명도받아주지않앗다
현역팀에있을때 지금은돈벌이하러진주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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