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주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경제 민주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 경남일보
  • 승인 2012.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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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 경상대교수, 한국식품유통학회 회장)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 ‘경제 민주화’가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여야가 앞다퉈 이를 주요공약으로 내 세움에 따라 관련된 헌법 제119조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제1항에서 대한민국 경제질서는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 반면 제2항에서는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을 설정할 때 제1항은 효율성(Efficiency)을 강조한 것이고, 제2항은 형평성(Equity)을 강조한 것으로 경제학자가 보아도 절묘하게 균형을 취한 것 같다.

경제학에서는 효율성의 원천이 자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경쟁이 담보될 때 나온다는 것이 증명된 바 있다. 시장이 경쟁적이란 것은 수요와 공급 양측에 충분히 많은 경제주체가 존재한다는 의미이고, 독과점은 이에 반하는 대표적 시장실패 사례다. 이렇게 볼 때 시장지배력 남용을 규제하고자 함은 참으로 적절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유방임주의는 독과점으로 귀결되었으며, 이에 따라 자본주의 국가들은 공정거래법을 통해 시장경제의 건전한 경쟁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경제정책 기조는 효율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시대상황의 변화와 정책결정권자의 의지에 따라 효율성이 강조될 때도 있고, 형평성이 강조될 때도 있다. 지금은 장기적인 경기침체 속에 소득 재분배의 확대 필요성이 대두되고, 재벌의 폐해와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됨으로써 형평성이 효율성보다 더 강조되는 경제 민주화가 대선정국의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의 올바른 방향은 첫째, 기업행위에 대한 사전 규제가 아니라 조세를 통한 소득 재분배를 강화하는 것이다. 조세부담률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25%인데 한국은 20%에 약간 미달한다. 부자에 대한 소득세율이 낮고 세금을 내는 소득자 비율도 선진국 평균인 80%에 비해 비교적 낮은 60%인 반면 조세를 통해 상대적 빈곤을 완화하는 정도도 꼴찌에 가까운 재분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법인세 부담도 각종 조세 감면으로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보다 더 낮은 세율적용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이 재분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분노를 낳고, 그 분노가 엉뚱한 희생양을 찾고 있다. 법 앞의 평등이 법치주의라면 시장 앞의 평등을 지향하는 헌법 119조는 먼저 부의 창출을 장려하고, 그 다음에 이를 잘 재분배하라는 뜻이다.

둘째, 재벌기업에 집중된 경제력의 분산과 거래질서의 확립이다. 재벌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칭찬해마지 않는다. 문제는 경제가 재벌기업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고, 그 성장의 과실이 중소기업과 서민에까지 흘러넘친다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이는 재벌기업들이 경제력을 오·남용하고 총수 일가가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재벌 총수 일가의 비리를 근절하며, 대기업을 일자리 창출 및 복지사업의 적극적인 실행자로 나서게 해야 한다. 이는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고 복지사회를 추구하는 정책방향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며, 경제 민주화를 위한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셋째,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해소이다. 이것은 하도급 중소기업과 농산업, 영세 자영업자와 농업인, 비정규직 노동자, 늘어나고 있는 청년 실업자 등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것은 대다수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며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것이 해소되지 않으면 경제 민주화가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냉소주의만 유발하게 된다. 기업·노동·복지정책의 체계적 조합이 필요하고, 일회성의 시혜적 조치가 아니라 당사자들의 참여를 통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시장을 공정하게 만드는 노력뿐만 아니라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사회적 보완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은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만악(萬惡)의 근원도 아니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시장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소득분배의 형평성이 제대로 작동되는 시장경제체제와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정부정책체제를 확립해 나아가는 것이 경제 민주화의 과제이자 방법이다.

/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대 교수·한국식품유통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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