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학수 (수필가, 산청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그런데 아직도 선생(先生)에 대한 개략의 정의와 올바른 인식을 가지지 못함은 한심하고 개탄할 일이다. 부질없는 교과서적 상식이지만 스승은 자기를 가르치고 이끌어준 사람을 지칭한다. 또한 선생은 나보다 나이나 학식이 앞서서 나를 가르쳐준 사람을 존칭으로 부르는 말이며, 은사(恩師)는 은혜가 깊은 스승일 따름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세상을 살면서 나를 인도하고 깨우쳐준 사람이면 모두가 선생이므로 스승이나 은사라는 용어도 창조적 유의어(類義語)일 뿐이다. 실상, 문제는 여기에 있다. 세상에는 스승과 은사는 고귀하고 훌륭하여 인간적인 급수가 선생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오해하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니, 여기에 또 하나 더 보태면 ‘담임선생’과 선생을 천양지차로 분리하는가 하면 담임을 하지 않으면 아예 선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니 참말로 어처구니없고 기막히는 현실이다.
모교 총동창회날이었다. 홍보 팸플릿 식순에는 ‘모교 은사 기념품 증정’이란 활자가 확대경처럼 비쳐졌다. 젊은 날 재직을 회상하며 행장을 차리고 내빈석에 대기하였지만 내내 무소식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떡 줄 놈은 따로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것이다. 재학시절 졸업반 담임만이 선생이라는 오판이다. 말하자면 본인이 학교에 다닐 때 초등학교 6학년과 중·고등학교 3학년 담임만이 은사이고 다른 사람은 별것 아닌 그냥 선생이라는 개념이다.
진짜 교육현장의 행정을 모르는 얼간이들이다. 선생의 어원조차 망각한 패륜아들이다. 헛말이 아니고 억설이 아니다. 1년 근무하면서 담임한 교사는 우리 선생님이고 5년 동안 재직하면서 담임을 맡지 않으면 다른 학교 선생이란 말인가. 재삼 강조하지만 내가 재학하던 그 당시 그 학교에 재직했으면 담임이건 아니건 간에 모두가 스승이요 은사요 선생님인 것이다. 더욱이 중등학교에서는 전공과목 교사가 따로 있기에 더욱 그렇다고 할까.
정말 몰라도 한참 모르고, 오해를 해도 엄청나고 커다란 착각이다. 바라건대 스승과 은사와 선생에 대한 올바른 인식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삼인행에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란 말이 있지 않느냐. 일시에 스친 행인이라도 나를 지도하고 계몽하면 내 인생의 안내자이며 스승이 되는 것인데 하물며 학창에서는 말해서 무엇하랴.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은 누구에게나 골고루 뿌려진다. 요즘 세상, 선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다는 말이 참말일까.
/수필가·산청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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