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준 선물
아들이 준 선물
  • 경남일보
  • 승인 2012.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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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희 (진주 문산초등학교 교사)
지난 10월 아들이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하였다. 아들을 둔 대한민국의 부모가 느끼는 착잡함과 머리 짧게 깎은 청년이 그냥 보이지 않는다는 주위 분들의 말씀을 절실히 공감하는 중이다. 귀가가 늦는 남편과 타지에서 수학하느라 자주 볼 수 없는 딸 대신 친구처럼, 때론 애인처럼 지내왔던 아들이었기에 내가 느끼는 허전함과 아쉬움이 더 크다.

아들은 대학 진학 후 1학기만 끝내고 바로 입대한터라 내심 많이 아쉬웠을 것 같다. 대학 교정에서 딱 반 년 누려본 달콤한 자유와 뭘 해도 사랑받는 신입생만의 특권, 동기들과 쌓을 수 있는 수많은 추억을 뒤로한 채 떠나는 마음이 어땠을까? 그런데 정작 아들은 자신에게 많이 의지하며 지내던 엄마가 더 걱정이었나 보다. 입대 이틀 전 여름방학 동안 아르바이트하며 벌었던 돈에 지인들이 군대 잘 다녀오라며 쥐어준 용돈을 보태어 날 위한 ‘선물’을 안겨준 것이다. 그런데 “씩씩하게 잘 다녀올 테니 아들 못 본다고 우울해하지 말라”며 자신을 대신할 그 무엇으로 선택한 것이 다름 아닌 ‘강아지’였다는 게 문제였다.

사실 나는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애완견을 안고 공공장소를 누비는 사람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했던 나다. 더구나 하루종일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있어야 할 강아지를 생각해 봐도, 먼 미래에 있을 이별에 가슴 아파할 가족들을 위해서도 도저히 키워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으로 아들의 기특한 마음은 헤아리지도 않고 애견센터에 반품을 요구했다. 하지만 반나절도 안 지났는데 생명이라 반품이 안 된다는 말에 감정이 상해서 화를 냈고 훈련 받으러 먼 길 떠날 아들 눈에서 기어코 눈물 나게 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아들이 떠나고 한 달 보름이 지난 오늘, 아들이 준 선물로 인해 우리 집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반가운 변화는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이다. 강아지가 부리는 재롱에 늦둥이를 본 마냥 귀가시간이 빨라진 남편, 공부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강아지 안부를 챙기는 딸. 강아지의 재롱 한 번에 힘든 일도 잊은 채 함께 웃고 혹시나 아프기라도 하면 같이 슬퍼하고 걱정한다. 각박한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앞만 보고 달려가던 우리에게 아들이 주고 간 선물은 단지 강아지 한 마리가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Healing)제이자 가족을 끈끈하게 묶어주는 정(情)의 매개체였다.

그리고 그 작고 여린 생명체를 볼 때마다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 가족의 소중함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가깝다는, 편하다는 이유로 남보다 더 소홀히 대하고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로 상처 입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면 늠름한 국군아저씨가 될 아들 눈에 눈물이 나게 한 그때의 상황이 떠올라 부끄러워진다.

/진주 문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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