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영혼의 숨결을 쓰려니
가을날 영혼의 숨결을 쓰려니
  • 경남일보
  • 승인 2012.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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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가을은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붉은 낙엽 한 장도 우리들의 꿈의 상징이며 사심 없는 그리움이고 연서이다. 비록 산길에서 지천으로 쌓여 뒹구는 낙엽을 밟고 걷는 묵묵한 저 그림자도 어쩌면 우리가 써야 할 한 줄의 절실한 글이 아닌가. 계곡의 단풍잎들도 바람에 나부낄 땐 이별을 고할 준비를 하고, 허리 꺾어 우는 산허리의 억새풀도 어찌 사람 사는 모습과 다르다고 느끼리까. 말라 시들어 가면서도 향기 그저 자욱한 가을 수풀 그 틈에 숨어서 저 홀로 호젓이 미소 짓는 한 떨기 들국화가 삼켜 감추어 내는 눈물까지도 우리들이 그려내어 써야 할 노래가 아닌가.

홀로 떨어져 밤하늘을 울고 가는 기러기인 양 서리치는 그 밤에야 나뭇잎은 붉게 물들고 또 떨어져야 하는 단풍의 절망과 용기와 슬픔을 생각하며 책상 위에 하얀 종이를 펴놓고도, 진실한 감동하나 찾아내지 못하는 이 어리석음이여, 결국 한때기의 밭에 하나의 고랑도 만들지 못한 채 헤매고 방황해야 하는가. 붉게 물든 단풍 한 잎처럼 불태우지 못한 청춘과 풀벌레 울음처럼 소리쳐 울어 보지 못하고 참아 온 분노와 억울함까지도 스산한 가을바람에 날려 띄워 버리고 말문 굳게 닫아 건 채, 한 구절의 글을 찾아서 어딘지도 모를 먼, 먼 길을 떠나야 한단 말인가.

써 보고, 써 보았어도 언제나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듯한 느낌에 확신도 소신도 사라져만 가고 엉뚱한 모양의 다른 빛깔만을 발견할 뿐. 아! 그러나 가을비 차가이 쏟아지는 창밖을 스쳐 가는 벌레 먹은 가랑잎 한 장에 스며있는 감동조차 토해내지 못할지언정 또다시 한 구절의 글을 찾아 떠돌이가 될 수밖에 없는 영혼의 광증, 이 증세를 무엇으로 어떻게 잠재울 수 있단 말인가. 헐고 찢기고, 병들고 늙어지도록 어처구니없이 자신을 파괴하며, 방황하는 어느 끝 막다른 골목에서 좋은 글을 찾으리까.

무가치의 가치가 무한정의 가치를 지니는 것을 믿고 굳게 확신하며 마지않으면서도, 실천에는 옮겨 내지 못하는 우리들의 속됨과 계산 밝은 불순에서 어떡하면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있을는지. 전신과 온 영혼의 정직과 순수인 낙엽 한 장도 시간이 지나면 탈색이 되고, 지나치는 발길에 밟히고 부서져 마침내 나무의 밑거름으로 사라져 버리는 아름다움이거늘. 낙엽 한 장만한 순수도 진실도 없는 우리들의 현실이여, 간밤의 서릿발에 사라져 안 보인다 하여도 감히 억울하다 생각지는 못할지어다. 아니 진실로 진정 마땅하고 마땅하다고 고개 끄덕여야 하리다.

맑고 푸르른 가을하늘 아래 한 송이의 가을꽃만도 못한 자신의 역부족의 도피 행각을 진정 어쩌자는 건지. 오르지 마음은 견딜 수 없어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어리석음에 고개 숙일 뿐이다. 그러나 어제의 소슬바람이 자취를 감출 때쯤 세상 아닌 어느 세상으로 떠날 것이다. 눈을 감아야 보이는 흐린 불빛 하나, 그 하나를 따라서 밤을 새우고 또 낮이 되고 해가 기울도록 우리가 모를 어느 세상을 헤매다 돌아올 땐 바라건대 많은 사람을 감동 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영혼의 숨결을 노래할 수 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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