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24>
오늘의 저편 <224>
  • 경남일보
  • 승인 2012.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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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장려정책에 발맞추어 아이들이 많이도 태어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영양실조로 너무 일찍 사망하는 아기들도 많았다.

아침나절에 화성댁은 뒷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아기무덤이 있는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그녀는 요즘 훤한 대낮에도 뒷산으로 향하고는 했다. 출입금지 푯말을 붙여놓지 않아도 학동 사람들이 뒷산으로는 잘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민숙이가 소문을 그럴싸하게 피워 놓았다. 전쟁 때 죽은 인민군의 원혼이 뒷산을 떠돌고 있다고 그렇게. 비라고 축축하게 내리는 날이면 음산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는 말까지 퍼뜨려놓았다.

“거 누구요?”

산죽이 있는 쪽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얼른거리는 곳을 본 화성댁은 선수를 치듯 소리를 질렀다.

사방은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내가 뭘 잘못 봤나?’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목적지로 가던 그녀는 목을 갸웃했다.

‘아니, 저 사람은?’

별안간 눈꺼풀을 찢어발겼다. 아이를 엉성하게 들쳐 업은 채 발소리를 죽이며 마을로 내려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본 것이었다.

틀림없이 숙희 아범이었다. 김가인 그는 남의 논을 붙여먹고 살던 사람이었는데 날품팔이라도 한다고 작년에 서울로 떠났다. 얼마 전에 학동으로 돌아왔다. 빡빡하기만 한 서울생활이 영 마음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쯧쯧, 살려고 어지간히도 발버둥을 치더니??.’

등에 아이를 업은 젊은 남자의 모습이 처량해 보여서 화성댁은 혀를 찼다. 더욱이 그의 손에 쥐여져 있는 자루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까지 보았다. 자루를 열어보지 않아도 속에 든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성댁은 마을로 내려가는 김가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상대가 아이까지 업고 산을 누비고 다녀야 했던 이유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확인은 해 두고 싶었다.

‘아, 틀림없어. 이 일을 어쩐다?’

자루를 든 채 곧장 부엌으로 들어가는 김가를 보며 화성댁은 애꿎은 가슴을 툭 쳤다. 머릿속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복잡하게 뒤엉키고 있었다.

솥뚜껑을 조금 연 김가는 자루 속에 든 것을 솥 안에 털어놓고는 재빨리 뚜껑을 닫았다. 등에 업힌 숙희가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에 놀랐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를 품에 안아 달래며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아이 이리 주게.”

망설이지 않고 남의 부엌으로 들어간 화성댁은 칭얼거리는 숙희 앞에 손을 내밀었다. 어린 것은 아비 품에 얼굴을 묻으며 화성댁을 외면했다.

“요, 용진 외할머니께서 어떻게?”

김가는 부뚜막에 올라가려다 들킨 고양이처럼 놀란 얼굴로 목을 움츠렸다. 잔뜩 굳은 얼굴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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