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야인 고향서 제2의 축구인생
돌아온 야인 고향서 제2의 축구인생
  • 임명진
  • 승인 2012.11.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남축구열전> 조광래 감독 (하)
‘독이 든 성배’, 한일 월드컵 직후 해외 언론들은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히딩크 감독이 떠난 뒤 포르투갈 출신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감독이 차례로 대표팀을 맡았지만 히딩크의 공백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팀을 떠난 사실은 이를 방증하고 있다. 그 당시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는 것 자체가 용기였다. 그 시기에 조 감독은 대표팀을 맡았다. 어려운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 축구발전을 위해 한 몸 바치겠다는 각오로 버텨냈다. 결국 축구협회로부터 제동이 걸렸고 아쉬움만 남았다.

◇절차 무시하는 축구협회는 아마추어

조광래 감독은 2011년 12월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전격 경질됐다. 감독 부임 후 1년 6개월 만의 일이다. 그리고 1년 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조광래 감독과 축구협회간에는 여전히 앙금이 남아 있는 듯 했다.

사실 쓴소리를 잘해 야인 이미지가 강했던 그가 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것을 두고서도 여러 억측들이 많았다. ‘축협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조 감독을 선임했겠는냐’, ‘오래 못 갈 것이다’ 등 등.

조 감독 역시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할 당시 어느 정도는 감수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어느 정도 프레스(압박)가 들어올 거라고는 사실 각오는 했었어. (나는) 축협과는 원래 노선이 달라서 더 그럴거라는 말도 있었고, 그래서 더 조심하자. 마음먹었는데…. 그런데 그 방식이 너무 아마츄어라고 할까.”

“아마츄어 라니…” 무슨 의미일까.

“절차라는 게 있는 거잖아. 하다못해 조기축구회 감독도 해임시킬때 여러사람이 모여서 의논을 하는 법인데, 명색이 한국축구의 얼굴인 대표팀 감독을 정리하면서 절차는 싸그리 무시하고, 이거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그런 식의 일 처리하는 것이 참 상식이하의 짓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 손이라니, 혹 아무개씨가 아니냐고 물었다. 살짝 고개를 끄덕거린다. 실명은 밝히지 말란다.

“워낙 야인 이미지가 강하셔서 축협에서 감독님을 선임한 것 자체가 의외라는 말도 있었어요”

2000년 안양LG치타스의 K리그 우승을 이끈 조광래는 긴 침묵을 깨고 K리그 2008 시즌을 앞두고 박항서 초대 감독의 뒤를 이어 고향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가 경남을 이끄는 동안 FA컵 준우승을 비롯해 특출난 선수 하나 없는 도민구단을 신인 유망주들을 주축으로 매년 중위권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 언론과 축구팬들은 그의 신인 발굴 능력에 주목했다.

“경남FC 감독을 할때 제의를 받았는데, 당시 경남이 성적이 좋고 게임 내용이 좋다보니 팬들도 좋아하고 언론들도 나를 많이 추천하는 분위기였어. 그 분위기에 협회에서 견디지 못했던 거지. 어쩔수 없이 나를 선임 안할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 버린거지”

하지만 일본전 참패, 레바논전 충격패 등 대표팀의 성적 역시 좋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경질)빌미를 제공했다고 봐야지. 핑계라기 보다는 참 아쉬웠어”

아쉽다니 나름 사정이 있는 듯 했다. “당시 대표팀은 함께 모여 훈련할 시간 조차 부족했어. 박지성, 기성용, 박주영, 이청용부터, 지동원이도 영국 가는 걸 내가 앞날을 생각해서 대표팀 합류를 안 시켰는데, 한꺼번에 대표팀에서 많이 나가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지. 선수 구성상 당시가 최악이었어”

그때 만일 그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그 대표팀을 몇 개월 동안 끌고 갔으면 대표팀의 향방도 달라질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대표팀의 핵심선수들이 빠져 정상적인 팀 구성이 어려웠고, 그것이 한일전 세골 차 참패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인데 어쨌거나 그때의 부진이 레바논전까지 이어지면서 경질의 빌미가 됐다는 사실은 틀린 말은 아닌 듯 싶다.

◇근시안적 행정 아닌 미래보는 축협 되기를

“축구협회장 선거에 두번이나 출마한 모 인사와 친해 축협의 눈밖에 났다는 말도 있던데요.”

“아니 그것도 말이 안되는게, 같은 진주 동향 출신이라서, 30~40년을 형, 동생하면서 알고 지내왔는데, 축구를 떠나서 인간적으로 가까운 그런 사이고 내가 대표팀 감독 됐다고 멀리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일각에서는 선수 기용 건을 두고 갈등이 불거졌다는 설도 들렸다.

“한번은 모 인사가 어떤 선수를 좀 뽑아달라고 했어. 한번 체크는 해 보겠다 했는데, 그런데 코치들이 보고 와서는 하나같이 다 ‘노’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그 팀 감독한테 전화 걸어 물으니 ‘지금은 도저히 대표팀에 들어갈 컨디션이 안된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뽑기 힘들다고 통보했어. 계속 설득이 오길래 코치들 한테 ‘이거 한번 오케이 하면 앞으론 두명, 세명이다. 처음부터 끊어야 된다’고 잘라 버렸어”

“그때부터 사이가 틀어진 건가요”

“그렇게 생각할수 밖에. 그전까지는 그럭저럭 별 마찰이 없었어. 나도 잡음이 없도록 노력했고, 일단 그 사건이후 그 이후로는 계속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으니까”

“또다른 일이 있었나요?”

“ 레바논, 쿠웨이트 경기를 앞두고 기술위원을 보내서 전력 분석을 할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달라고 하니깐 하는 말이 경비가 든다는 거야. 기가 차지. 아니 월드컵 예선전을 치루고 있는데. 그게 말이나 돼. 하도 기가 차서 그럼 됐다고 하니 우리 코치보고 가서 하라는 거야. 코치는 UAE전 준비에 온 신경을 써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겠어.”

결국 일은 터져 버렸다.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3차 지역예선에서 대표팀은 레바논에 충격 패(1-2)를 당했다.

“감독을 하다 보면 안 좋은 타이밍이 꼭 있기 마련인데, 예선전 한 경기 한 경기에 일희일비 하는 게 안타깝지. 지금 생각해 보면 만일 그때 그 선수를 뽑아줬더라면 경질까지 시켜겠어”

그의 경질 논란은 국정감사에서도 불거졌다. 잔여연봉 미지급 논란도 일었다. “나도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머 찍혔대나. 허허” 조 감독은 그 찍힌 이유를 한번 듣고 싶어 한번 축협에 질의를 해볼까 생각중이라고 한다.

“히딩크 감독도 시작은 ‘오대영’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안 좋은 타이밍이 있었지만 결국 월드컵 4강까지 갔어. 이제는 축협도 근시안적인 행정이 아닌 한국 축구 미래를 보고 변했으면 하는 바람 뿐이야”

◇고향서 연 바르셀로나 축구교실=인생 제2막

조광래 감독은 1년 6개월 만에 다시 야인으로 돌아왔다. 그간의 아픔을 딛고 그는 고향 진주서 제2의 축구인생을 꿈꾸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참진주 바르셀로나 조광래 축교 교실이 문을 열었다.

“선수시절이나 지도자를 주로 서울서 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해 준 고향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갖고 있었어. 기회가 되서 바르셀로나 축구교실을 열게 됐는데 나보다 더 똑똑한, 더 좋은 선수를 많이 배출 할 수 있도록 바르셀로나 축구교실을 제대로 한번 키워보고 싶어. 진주 뿐만 아니라 경남지역의 축구인재들을 많이 길러내서 프로에도 많이 진출시키고 싶고”.

k리그 복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또 해야지. 맡을 팀이 생기면 또 해야지. 그런 계획을 갖고 있어. 바르셀로나 축구교실도 잘 되어야 할테고”

아무도 선뜻 맡으려고 하지 않았던 독이 든 성배를 기꺼이 받아 든 조광래. 비록 자신의 축구인생 중 가장 쓰라린 아픔으로 남았지만 그는 또다시 승부의 세계가 펼쳐지는 녹색 그라운드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