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主禮)와 주례사(主禮辭)
주례(主禮)와 주례사(主禮辭)
  • 경남일보
  • 승인 2012.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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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학수 (수필가, 산청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주례는 결혼의 예식을 맡아 주장하여 진행하는 사람이고, 주례사는 바로 그 시각 신랑신부와 축하객 앞에서 하는 말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인생 새출발과 함께 비로소 어른이 되는 젊은 남녀에게는 인품의 고매함은 물론이고 권유하고 당부하는 용어 하나하나를 엄선해야 함은 두말이 필요 없다.

살펴보면 주례는 인위적 차별과 양극화의 산물로 인하여 결혼하는 총각과 처녀의 등급에 따라 면면히 다른 인물이지만, 주례사는 어느 누구든지 사치와 과시로 명언 명구를 인용한들 결국에는 천편일률적이며 오십보백보이다. 때로는 제아무리 만상의 원리와 사단(四端)의 철리를 접목하더라도 드디어는 오륜으로 귀결된 통속적인 내용인 것이다.

심지어 인생길의 사랑과 정을 담아 행복하게 살라고 간곡하게 부탁한들 현대인의 의식 자체가 물질문명과 이해타산에 진하게 물들어 있는 한 후일에 잘살고 못살고를 누가 감히 단언하겠는가. 사실 무학촌부자(無學村夫子)의 꾸밈없는 직언이면 어떠하고, 현학사대부(衒學士大夫)의 심오한 학설이라고 해서 으쓱거리고 뻐길 수 있는 혼례식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주례의 실체는 어떤 사람이고 주례사의 의미는 또 어떠하단 말인가. 우선 당사자인 신랑과 신부가 평소에 친분을 맺고 상교하면서 존경했던 선배나 스승이면 최선의 적격자이다. 지위가 높고 권세를 누리는 고급관리나 부귀명예가 드높은 유력인사는 끼리끼리 선호하는 일시적인 상대일 뿐이고, 보통 사람이면서 청렴하고 정직하여 여러 사람들의 수범이 된다면 그는 주례의 자격을 오래도록 유지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 자체가 중요할까. 아니면 그 사람의 말이 더 소중할까. 말할 것도 없이 주례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그 혼인의 당사자와 예식에 참석한 다수의 하객이 그냥 좋다고 인정할 때 비로소 주례로서 합격점을 얻게 된다. 그런가 하면 주례사는 거기에 참석과 불참에 관계없이 그 말을 언제 어느 곳에 인용하더라도 누구든지 찬동하고 공감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알다시피 주례는 사람이요 주례사는 말이므로, 그 순간의 사람과 말은 빈부와 지식의 척도가 아니라 인간적 향기와 인륜의 절차이며 공통된 형식일 따름이다.

돌이키면 어언 한 세대가 넘은 그날, 처음으로 주례를 맡았으니 중책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부러 몇몇 예식장을 찾아 주례사를 귀담아 들은 일이 있다. 사노라면 인생의 후회와 반성은 삭제와 생략이 없는 이승의 삶이며 행복쌓기의 진통이라고 할까. 차라리 요즘 세상을 예견했다면 효도와 봉양과 향토애 대신 시어머니와 대립하지 말고, 장모에게 밉보이지 말고, 명절 때만이라도 부모님을 꼭꼭 뵈오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을 것이다. 바쁜 인간, 복잡한 사회에서 바른말, 쉬운말, 고운말로 구체적인 주례사가 어떨까 싶다.

/수필가·산청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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