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는 시골의 하루
가을을 맞는 시골의 하루
  • 경남일보
  • 승인 2012.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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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이야기]최용조 박사 (경남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관)
형제님, 잘 계시지요.

늦가을이라 농촌의 분주함이 누그러들었지만 나무들을 다시 다듬고 자그만 땅콩과 고구마를 캐고 채소 뜯으며 얼굴에 미소 가득 머금은 나날들이 꿈처럼 흘러갑니다. 얼마 전에는 텃밭에 심었던 가을 약도라지를 캐다가 먼데 계신 형제님들께 부쳐 드렸습니다. 키워 놓고 제대로 거름조차 하지 않았더니, 4년이 되었는데도 뿌리는 기대보다 작지만 건강하게 자란듯하여 전부 캐어다 보내드렸습니다. 모두가 큰 선물인 양 고마워합니다. 사실 씨만 뿌려 놓고 풀조차 제대로 매어주지 못해 안타까웠던 게 몇 해인데, 자연의 선물은 이처럼 항상 풍요롭습니다. 또한 이웃에게도 나누어 드렸더니 보시고는 돈은 되지 못해도 이렇게 자란 것이 보약처럼 귀하다고 되례 챙겨 드리지 못한 주위분들이 참으로 아쉬워합니다.

하지만 정신없이 보낸 날들 속에서 손가락이 마디마디 밤마다 아려옵니다. 이만큼의 일로 벌써 몸에 무리가 오다니 정작 농사 짓는 분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요즈음의 농사일은 기계로 한다지만 그래도 괭이와 삽이 우선입니다. 힘이 들어 막걸리 한 사발에 고단함을 잊고자 하는 분도 보았습니다만, 술꾼이 일꾼이라던 옛말이 농사꾼의 몸을 더더욱 힘들게 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지인은 늙으면 관절염이 온다며 몸을 아끼라고 합니다만, 애써 심어 놓은 작물들이 잡초에 가려져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부지런한 벌레들은 우리를 쉬도록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비록 뼈마디가 쑤시고 내일 일어나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별수 없이 호미나 괭이를 들고 나가야 합니다. 작은 텃밭농장 하나 가꾼다는 핑계로 이렇게 살다가 덜컥 병이 드는 것은 아닌지, 눈에 보여지는 일을 모른 척 외면하지 못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귀중한 그 무엇을 잃고 사는 것은 아닌지 문득문득 겁이 나기도 합니다.

형제님.

꽃밭엔 병아리 같은 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하고, 코스모스의 속삭임이 한창입니다. 가을이면 만물이 그러하듯 수확의 계절이라 바쁜 속에서도 이처럼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과 어울려 환희의 기쁨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한여름을 지나온 산과 들판의 꽃과 향기가 어우러진 자연은 신의 선물처럼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만, 그 선물 속에는 재 너머 긴 고랑에 아득한 한숨이 먼저 나온다는 시골 아낙의 가슴 아린 슬픔도 함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형제님.

지금 흘리는 땀에도 감사의 기도를 함께합니다. 형제님들의 미소와 탐스럽게 영글어 있는 밤과 다래 그리고 겨울이면 또 다시 맞게 될 시골 화롯불의 군밤 향을 생각하며 다가오는 귀농길을 음미해 봅니다.

최용조 박사/경상남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관

최용조
최용조 경남도농기원 농업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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